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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원두막이 서 있던 여름

문태준 / 시인
문태준 / 시인  

[LA중앙일보] 발행 2019/08/24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9/08/23 19:25

폭염의 때에 걸으러 바깥으로 나가서 여름의 폭염 속에 있는 것들을 보았다. 밭에서 풀을 뽑던 농부는 햇빛을 못 이겨 잠시 뽕나무 아래 그늘로 들어와 앉아 땀을 닦고 있었다.

고추가 익고, 땅콩과 고구마의 순이 왕성하게 자랐고, 한 장의 깻잎에도 향기가 짙어졌다. 옥수수가 여물어 익고, 해바라기가 붉은 태양을 향해 우뚝 높이 섰다. 잠자리는 헬리콥터처럼 떴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하나의 강이라면 지금은 아마도 강의 가장 깊은 수심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매미가 고음으로 울고, 수풀은 무성해졌다. 그늘의 면적은 좁고, 얼음 같은 냉기를 구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적에도 어느 때보다 서로의 감정과 생각의 예리한 끝이 서로 부딪치는 경우가 잦다.

내가 기억하는 여름날의 시골 풍경 가운데 원두막의 풍경이 있다. 다락처럼 높은 위치가 좋았고, 멀리까지 훤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리는 것이 좋았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드물게 원두막에 오를 수 있는 행운을 얻은 날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 원두막 아니라면 여름날의 고된 노동이 잠시 쉬어갈 그늘의 공간도 없었을 것이요, 또 여름날의 어떤 운치 같은 것도 덜할 것이었다.

원두막을 지어놓고 밭을 지키는 일을 삼 년 동안 하면 인심을 잃게 된다는 말도 있지만, 시골에서의 원두막은 햇볕을 피하는 곳이요, 바람을 쐬러 가는 곳이요, 열대야를 피해 밤잠을 청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폭염의 여름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도 원두막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문이 없이 사방으로 열린, 사방의 바람을 다 받아들이는 원두막처럼 마음을 사용해도 좋겠다 싶은 것이다.

시인 백석의 시 '박각시 오는 저녁'에는 여름밤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쏘이는데"라고 쓴 대목은 특히 그러하다. 당콩밥은 강낭콩을 넣어 지은 밥이다. 그 밥에 가지 냉국을 곁들이니 여름날의 별미이다. 바가지꽃은 박꽃을 일컫고, 박각시는 나방을 뜻하고, 주락시는 줄나방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라고 쓴 부분이다. 저녁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안팎의 문을 모두 열어젖혀 놓는다.

내 시골에서는 밤에 집집마다 문을 열어젖혀 놓고 산다. 불편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옆집에서 앞집에서 뒷집에서 살림하는 소리들이 손에 잡힐 듯 들려온다. 건네는 말소리, 짐승의 소리, 발걸음 소리, 그릇을 씻는 소리가 이쪽 집에서 저쪽 집으로 서로 오간다. 그래서 내 집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가급적 줄이려고 애써 조심하고, 또 다른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는 너무 예민해하지 않고 무심한 듯 넘겨버리고 산다.

밭에 세워놓은 원두막이나 안팎의 문을 열어젖히고 사는 시골의 여름날 풍경은 우리 마음의 개방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여름에는 마음을 보다 넓게 쓰고, 또 아량이 있고, 여유도 좀 갖고 살 일이다. 내가 먼저 삼가고, 남을 더 수용하면서 살 일이다. 이렇게 하면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내게도 남에게도 불어오고 불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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