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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지금은 흔들리는 것이 정상이다

혼동과 격동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리는 것이 정상이다. 구시대의 유물이라고까지 생각했었던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우리의 의식에서 다시 꿈틀대고 있다.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고통을 한동안, 어쩌면 평생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상대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만 있다면 어떤 손해와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들을 반기면서도, 그 결연함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당혹스럽다.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일상의 선택들이 우리의 의식에서 검열당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는 것과 같은 사적인 행위들이 공적인 영역으로 격상(혹은 격하)되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검열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선택의 다양성, 이국적 취향, 글로벌 소비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되었던 대상들이 이제는 자신의 사상을 검증하는 증표가 된 것이다. "예전에 잡힌 일정이라 어쩔 수 없어"라고 정당화하지 않고서는 이웃 나라를 방문하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그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면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자기 검열이 최소화될수록 개인의 삶이 행복해진다는 점을 이제 막 깨달은 나머지 아쉬움이 클 뿐이다.

이뿐인가. 사람들에게 룸메이트로 가장 꺼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으면, 음식 취향이 다른 사람이나 좋아하는 음악이 다른 사람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기피 인물 1호는 정치적 견해가 정반대인 사람이다. 촛불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한 방을 쓰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태도는 단순히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한 그 사람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며, 그 사람의 도덕적 판단의 핵심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가급적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국내외 상황은 우리를 확실하게 편 가르고 있다. 정치적 관점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있고, 자칫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신세 망치거나 서로가 의 상하는 일이 생길까 봐 극도로 조심하는 형국이 되었다. 모두가 날카로운 칼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어쩌면 이런 분열과 검열이 이 싸움이 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경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몇 가지를 스스로 실천하고자 한다.

첫째, 지금은 마음이 불안한 것을 정상이라고 받아들이자. 이 모든 것이 다 처음 아닌가? 둘째, 다른 사람도 마음이 불안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응원할 존재이지, 지적하고 낙인찍고 공격할 사이가 아니다. 셋째,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모든 해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자. 전문가들이 냉정하게 분석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들의 말투와 표정 속에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오만함이 배어날수록 사람들은 더 불안해진다. 때로는 당황하는 전문가를 보고 싶다.

넷째,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똘똘 뭉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개인'의 삶도 충실히 살아내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비장하게 싸우는 모습만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나라다. 국민으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균형 있게 살아내자.

마지막으로, 보편적 인류애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하자. 치열한 갈등과 대결의 국면에서도 한 개인의 생명과 안녕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말자. 설사 그 개인이 우리 편이 아니라 할지라도.


최인철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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