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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매미

길을 나섰다. "여름은 참 길기도 하다" 하면서 올라오는 열기를 느꼈다. 작년에 하늘 보고 걷다가 심하게 넘어져 손가락이 부러진 다음부터 땅을 살피며 걷는 습관이 생겼다. 배를 뒤집고 죽어 있는 매미를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부모님 말 잘 듣는 아이 잠자듯 가슴 위로 가지런히 손발을 모은 모습이다. '예쁘기도 하지' 속으로 감탄을 하면서 여섯 개의 수족과 탄탄해 보이는 몸통 그리고 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stained glass) 같은 날개를 꼼꼼히 살폈다.

매미는 한동안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대더니 지난 며칠 동안에 울음이 사그라졌다. 매미가 울음을 멈추면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늘을 보니 새 깃털 같은 구름들이 진시황의 병정들처럼 줄지어 드넓게 펼쳐져 누워 논다.

감당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시작되는 계절이 다가온다. 매미가 왜 그리 슬피 울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 느낌 알 것 같다. 본능적으로 개체 보존을 위해서만 그렇게 목 놓아 부르짖지 않았을 것이다. 길게는 17년을 어둠 속에서 꿈틀대고 견디어 낸 세월. 그것이 억울해서 울었을까? 아니면 한낱 미물인 매미가 그토록 바라던 바깥 세상, 푸르른 나무들과 화사한 햇살, 지독한 여름의 열기에 취해서 그랬을까? 운명적으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한 것 아닐까? 매미의 부르짖음은 힘없는 사람들의 절규 같기도 하고, 사연 많은 사람들의 울음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나도 매미의 절박함에 같이 마음을 실었나 보다. 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가슴 속 정서가 메말라서 그런 걸까? 가끔 좋은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나쁜 노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더 가슴을 울리는 진솔한 좋은 노래들이 있다. 매미의 소리가 그런 노래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매미 울음소리에 울컥해지면 순간, 축복 받은 기분이 든다.



운다는 것, 참으로 거룩한 일인 것 같다. 2주간의 짧은 삶은 치열하고 성스러운 예식이다. 가슴으로 아프게 울어대는 매미가 여름을 잘 보내고 가을을 경건히 맞이하라는 하늘의 선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매미의 울음 소리가 점점 가늘어져 가다 어느 날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난 알 것이다.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마치 나에게 반성문을 작성하라고 일러준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위해 소리치고 악을 쓰고 살아온 것 인지. 또 남은 시간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 인지 생각하게 한다.

매미의 가슴앓이는 울음으로 터져 나와서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끝없는 어두움과 축축한 땅 속. 오랜 기다림 속에 주어진 기회를 여섯 개 갈고리 같은 수족으로 움켜쥐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환골탈태한 성인의 모습으로 남은 허물. 교만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나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오늘도 여름과 가을의 모호한 경계선에 우두커니 서서 매미의 절규를 헤아려 본다. 고귀하고 거룩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신의 손짓처럼 뭉클하게 매미의 힘찬 울음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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