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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정보 다이어트' 필요하다

소설을 쓰고 독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소설의 힘이 뭐냐,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면 미국 작가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소개한다. 잭 니컬슨과 제시카 랭이 나온 1981년 할리우드 영화의 원작 맞다.

출간 당시에는 통속소설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제는 당당한 고전이다. 20세기 최고의 영문소설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삼류 건달이 자기가 얹혀사는 식당 주인의 아내와 불륜에 빠져 보험 살인을 계획한다. 물론 일은 뜻대로 잘 풀리지 않고 그들은 대가를 치른다. 신문 사회면에서 흔하게 보는 내용이다.

이 작품 속 사건이 21세기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나 신문기사가 나오면, 그래서 포털 뉴스사이트에 오르면 거기에 어떤 댓글들이 달릴지 나는 안다. 아마 베스트댓글은 '저것들 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형시켜라'일 것이다. 그 아래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댓글이 달릴 것이다.

그러나 신문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읽으면 '도덕적으로 충분히 끔찍하고 멍청한 남녀'(저자의 표현이다)가 사람을 죽일 마음을 품게 되는 여러 사연들을 보게 된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둘이서 도망쳐서 잘살아 보자고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차는 없고 버스정류장은 멀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울면서 한참 히치하이크를 시도하다 깨닫는다. 어차피 도시로 가도 달라질 게 없음을. 자신들은 계속 초라한 곳에서 창피한 일을 해야 하는 처지임을.



사연을 알아도 옹호할 수는 없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범죄자들이고, 제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앞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돌로 쳐 죽이자'는 말은 못하게 된다. 범죄자이고, 벌을 받아야 하지만, 가엾기도 한 것이다. 이게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

신문기사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타인이 선 자리를 이해하려면 구질구질한,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한 문장으로 압축하거나 아니면 빼버리고 마는 상대의 사연을 다 들어야 한다. 경청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다. 거기서 인간다움이 시작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신문기사도 길어서 못 읽겠다고 한다. 그래서 포털사이트들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뉴스 요약서비스를 제공한다. 몇몇 언론사는 카드뉴스라는 것을 만들어 뿌린다.

이런 정보들은 싸구려 스낵 같다. 얇고 바삭해서 한 입 먹으면 짜릿한 쾌감이 든다. 그 쾌감은 곧 사라지므로 바로 다음 조각으로 손을 뻗는다. 어느 연예인이 말실수를 했고 누가 이혼 위기에 빠졌는지, 다음 조각, 또 다음 조각….

사연 없는 매체로 세상을 보는 이들의 반응은 늘 과격하다. 오늘은 이 자를, 내일은 저자를 광화문 네거리에 매달자고 한다. 사연 없는 매체를 만들고 운영하는 이들은 싸구려 스낵을 만드는 회사와 비슷하다. 상품을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이고 중독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다. 물론 포장지에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들었다거나, 진실만을 추구한다고 적는다.

짭짤한 감자 칩을 먹다가 중단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과자봉지를 뜯는 것 자체를 주의해야 하고, 일주일에 몇 봉지 이상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싸구려 스낵 삼가기를 넘어 좋은 요리를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

정보 섭취에도 같은 요령을 적용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 전 인터넷 뉴스는 아침에 정해놓은 시간에만 읽기로, 몇몇 인터넷 사이트는 아예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심심할 때는 책을 손에 잡는 습관을 들이려 한다. 무의미한 웹서핑을 하느니 차라리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이 나을 때도 있을 것 같다. 정보도 다이어트가 필요할지 모른다.


장강명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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