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정만진 문학칼럼: “아름다운 귀천”

지난달, 성당 교우이신 동갑내기 80대 노부부께서 하루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선종하시어, 두 분의 관을 나란히 모시고 합동 연도와 Viewing 및 장례미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귀천歸天 의식에 참례한 특별한 경험을 했다.

백년해로한 부부가 같은 날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지만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일을 직접 목격했다. 돌아가신 노부부와는 투병 기간 중 찾아 뵌 인연도 있었기에 놀랍고 실감 난다. 몇 달 전 형제님께서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있을 때 신부님께서 종부성사終傅聖事를 주시는 자리에 함께했다. 신부님께 내가 마누라 보다 앞서가면 안 된다고 하시던 결연한 말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죽으면 마누라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던 부인의 간병을 형제님 혼자서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금슬이 남달랐던 두 분은 슬하에 4남 2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꾸렸으나 자식들 모두 달라스와 멀리 타 주에 살고 있어서 모친의 병간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추슬러 가며 부인을 간병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먼저 돌아가시면서도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부인 손을 잡아끌면서 함께 아름다운 귀천 길에 올랐지 싶다. 헌칠한 키에 호남이신 형제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매님도 불편한 몸을 남편한테 의지한 채 성당에 나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남편이 돌아가신 날 부인의 병세도 갑자기 악화되어 신부님의 종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은총 속에 그 다음 날 선종하셨다.

장례미사를 집전한 신부님께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주제로 참 신앙인으로 살다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함께 손을 잡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고인들을 추모하시고, 슬품에 잠긴 가족과 조문객들에게도 새삼 죽음을 성찰케 하는 귀한 말씀을 주셨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우리 부부는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 하라’는 결혼식 주례님의 당부를 들은 지 올해로 40년이 되었지만, 이번에 함께 귀천하신 부부는 1957년 말에 결혼한 62년 차 동갑내기다. 러브스토리는 이러하다. 두 분은 한국에 있을 때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귀던 사이였는데, 형제님이 1950년대 중반에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주립대학에 먼저 유학을 와서 잠시 헤어졌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아시던 자매님의 부모님께서 뒤따라 유학을 보내주시어 만나게 해주셨다.

이렇게 맺어진 두 분은 슬하에 6남매를 두고, 후손으로 손주가 12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남기셨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휴스턴으로 옮겨와 살면서 한인성당 사목회장 및 한인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동포사회의 단합과 발전을 위해서도 애를 많이 쓰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녀와 손주들이 한국말을 잘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자식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힘써야 하고 후손들에게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리고, 이번 노부부의 마지막 가는 길을 50년 이상 우정을 나누며 가족같이 지냈던 교우 자매님이 헌신적으로 도와주던 모습에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이번 노부부의 아름다운 귀천과 이웃사촌들의 우애는 모두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또 몸이 불편한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매주 주일미사에 참례하시는 또 다른 어르신의 사랑도 본받아야 한다. 요즘 순주를 돌보느라 많이 지쳐있는 아내에게 수고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불쑥불쑥 상처만 준 것에 대한 반성을 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귀천을 함께 할 염치는 없지만, 이제는 정말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같이 할 날이 많지 않다.

작년 11월, 위령성월慰靈聖月을 맞아 “생의 마지막 인사, Viewing”이라는 제목의 문학칼럼을 썼었다. 가톨릭교회 장례예식에서 교우들과 합동으로 바치는 연도煉禱가 끝나면 앞으로 나아가 관속에 안치된 고인과 Viewing 이별을 한 후 유족들을 위로하게 되는데, 미국식 장례문화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머릿속이 하얘져서 고인에 대한 예의와 가족들의 위로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Viewing 문화 충격과 함께 죽음에 대한 묵상을 적은 글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죽은 후 부활하여 하늘나라에 올라 영원한 삶을 누리리라는 부활 신앙을 믿는다. 우리에게 죽음은 단순히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옮겨간다는 고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장례미사 시에는 제대에 부활 초를 밝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고 이별이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 노부부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귀천을 보면서, 우리 모두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보다는 ‘Well-Dying’ 준비를 통해 자기의 주변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며 후회 없는 여생을 보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해본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