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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민 칼럼]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한국사회가 왜 그리 시끄러운가? 자기 분야가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일에 시민들의 간섭이 심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작은 정책 하나가지고 옳으니 그르니 거리에 나와 시위들을 한다. 소아적 영웅주의에 도취된 까닭이다. 그런 행동들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 플라톤의 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정의란 “각자 자기가 맡은 분야나 일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을 되새겨 본다면, 자기일도 아니며, 전문가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어떤 사안에 대한 일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서 하게 하면 되지 국민들 개개인이 나서서 팻말을 들고 정치사안이나 정책에 이런저런 자기 주장들을 일일이 쏟아 내는 것은 바르다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지금의 여당들이 야당이었을 때도 그러했지만, 야당들의 투쟁은 대부분 정권잡기 위한 목적때문에 하는 것으로, 부당하거나 지나친 것도 마다하지 않고 주장하는 것이어서 그들의 의도를 잘 알고 판단하고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쨋든 그런 대표자들을 국회로 내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간섭하는 것은 의회주의를 신봉하는 국민들이 해서는 않될 일이 된다고 본다.

또 한가지 조심해야 할 일은 어느 한 인간을 두고 영웅시하고 신격화 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봉건시대는 군주들이 백성들을 우민화 하였다. 그래야 통치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악덕 군주들은 이런 우민화로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을 신격화 하게 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체제가 있는데, 북한이 대표적인 경우다. 한국도 그런 정신을 가진 자들이 아직도 있다. 한 전직 대통령을 반신반인 으로 신격화 하는가 하면, 종교에서도 인간을 신이라 하여 예배하는 집단들도 있다.

어느 인간을 높여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정신을 보면, 대체로 두가지로 나뉘어 지게 되는데, 너무 아첨하는 일이거나, 아니면 노예근성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근성에 사로잡혀 특정인을 가르켜 신이라 말 하는 것은 인간 우상 숭배로서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을 하되 인간임을 자각하고 도덕과 이성에 기반한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한다.



말 중에 정말로 해서는 않될 말이 있다. “나라가 망한다”와 같은 것이다. 그런 망언을 거리 에서나 어디서건 무책임하게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말 하는 대로 되어 진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도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텐데, 함부로 그런 말 해서 되겠는가. 성경에도 숨겨놓은 자들로 하나님의 뜻을 지켜가게 하신다는 교훈이 있다. 우리에게도 숨겨진 정의와 진실이 있는데 어찌 망한다 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말 조심 해야 하는 것이다.

말 같지 않은 말 많이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다. 성경 전도서 5:2-3절에,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니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 나느니라” 하고 있다. 하나님 보다 앞서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감추어진 보화 이야기가 성경에 니온다. 감추어진 보화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지, 뜻 즉,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리석어 감추어진 진리를 찾지 못하고, 밖에 나타난 현상만 바라보고 시끄럽게 말한다. 무엇이 진리인지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다 환하게 들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눈 앞의 것을 가지고 그것으로 많은 말을 하면 않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실 말씀을 조용히 하셨다. 예를 들어, 기도하려면 길거리에서 하지말고 골방에 들어가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셨다. 그래서 광야에서, 골방에서,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하신 모습을 오늘의 우리 사회에 비교하여 볼 때, 특히 정치와 연관된 거리 에서의 기도는 사실 기도라기 보다 운동이나 선동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영조때 김천택 시인은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하여 가치없는 말 쏟아 내는 자들을 조소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말로 정말 그의 말이 새삼들려지는 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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