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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DMZ를 찾아가는 예술가들

몇 년 전 강원도 양구의 을지전망대를 갔었다. 사실 나는 그때 휴전선을 처음 봤는데, 미안하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진짜 휴전선인가. 동행한 작가의 말처럼 영화 '트루먼 쇼'가 떠올랐다. 물론 휴전선은 가짜가 아니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것을 가짜인 것처럼 느꼈을까. 그동안 분단과 전쟁과 대립이 불러일으킨 저 거대한 정념들의 무게에 비하면, 막상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그곳은 그저 하나의 적막한 풍경, 그것도 대단히 어설픈 무대 장치에 지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한반도의 허리에는 오래전부터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임진왜란 때 명군과 왜군 사이에 이미 한반도 분할에 대한 협상이 있었고, 구한말 러일의 충돌 시에 재시도 되었으며 마침내 1945년 이후 지금과 같이 현실화되었다. 그러한 역사적 사정까지 살피면 지금의 휴전선은 단순한 남북의 경계선을 넘어선다. 어쩌면 그것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문명과 문명, 제국과 동맹이 충돌하는 역공간(liminal space)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DMZ는 경계라기보다는 차라리 심연이다. 그것은 블랙홀이다. 한국인의 정신적, 문명적 상상력은 모두 그곳으로 떨어지고 빨려 들어가서 죽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한국인에게 세상의 끝이다. 거기에서는 온갖 이데올로기와 갈등이 분출되고 음모와 분열이 획책된다. DMZ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남북 분단과 대립, 경계라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예술가들이 DMZ로 달려가고 있다. DMZ를 주제로 하는 예술 프로젝트들이 부쩍 늘어났다. 미답의 장소에 예술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비어 있는 세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때문만이라면 곤란하다. 사실 DMZ를 대상으로 한 예술 활동은 1990년대 초부터 있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가히 DMZ 예술 러시라고 불러야 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DMZ를 장소나 공간으로만 보려는 접근이 그리 발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은 말머리에서 지적했듯이 장소라기보다는 차라리 비장소이며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얼마 전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프로젝트(2019 DMZ 국제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온새미로')의 간담회에 참석한 한 외국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에서 접하는 DMZ의 상황은 긴장감을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곳이지만, 실제 DMZ의 현장은 일종의 관광지로 상품 판매 등도 진행해 굉장히 놀랐다"며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이 의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우리의 식견과 생각, 기대로 인한 국경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과연 경계가 그어진 곳은 어디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DMZ는 정말 거기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나는 지금 우리에게 DMZ라는 이름의 심연을 과감하게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쟁과 평화와 경계에 관한 판에 박힌 인식을 넘어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존 관념에 구멍을 뚫어 그 안을 들여다볼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범 /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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