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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까치설, 아치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은 내가 신어요.” 1927년 윤극영 선생이 작사·작곡한 설날 노래다. 올해 까치설이 다음 주 금요일 24일이고 우리 설날은 그다음 날 25일 토요일이다.

그런데 왜 우리 설 하루 전날이 까치설로 명명되었을까?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에 의하면 원래 우리 설 하루 전 즉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로 불렀는데 지방에 따라 작은 설의 작다는 순수 우리말을 사용 아치설로 불렀다. 그런데 이북에서 월남한 윤극영 선생의 귀에 아치설 발음이 까치설로 들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 선생의 설날 노랫말에아치 아치 설날은 어저께가 아닌 까치 까치설날로 변신케 되었다는 서 교수의 주장이 정설로 인정되어 한국문화상징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필자세대에게 아치설은 일 년 중 가장 바쁘면서 기분 좋은 피곤한 날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이날 부킹된 심부름양이어마어마해서다. 심부름의 대부분은 이웃 간에빌려 쓴 톱·낫·대패·삽·괭이 같은 연장들을 돌려주고 받는 일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 산 넘어 산촌에 사는 친인척에게 빌린 돈을 돌려주는 위험한 일까지 감당해야 할 때도 있었다. 당시 어른들은 묵은해의 짐을 새해까지 끌고 가는 것은 빚을 부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날 모든 계산을 끝내고 새해를 제로베이스로 시작하는 것이 선조들의 교훈과 전통에 부합하는 덕목으로 삼았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 아치설은 새해의 마중물이다. 어른들은 집안 곳곳의 묵은 때를 말끔히 정리해야 마치 새해가 오는 양 평소와 궤를 달리하는 청결 법을 택하셨다. 우선 안방 안쪽 밀창 방에 자리하던 장롱, 신주쌀독 및 중요 가보들을 대청마루로 모셔낸 뒤 장판을 새로 바꾸고 도배는 물론 출입 문살도새 옷으로 갈아 입힌다. 같은 시간 어머니는 광속에 잠자던 놋 제기들을 꺼내 깨어진 기왓장 가루를 용매 삼아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광택 내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신다.



분주했던 낮이 가고 저녁이 오면 온 식구는 비로소 설맞이 의식에 돌입한다. 그 첫 순서가 묵은 때와의 작별이다. 목욕탕이 없던 그 시절 소죽을 끓여낸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붓고 데운 뒤 차례대로 들어가 여름 이후 겹겹으로 쌓인 뭉치 때를 굵은 삼베수건으로 북북 긁어내는 작업이다. 목욕 후 방으로 뛰어들면 어머니는 윗목에 고이 접어 두셨던 무명 바지저고리를 꺼내 입히시고 아버지는 준비한 돈뭉치를 품속 깊은 곳에 찔러주시며 이날 밤 가능한 많은 돈을 지니고 자야 명이 긴 법이라 하시며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잠과의 사투다. 이날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된다는 말은 요즘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가 벽난로를 통해 선물을 갖다 준다는 정도의 공신력이 있어 애써 버텨보지만 역시 잠은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그래도 늦은 밤 부모님이 펼칠 이 날 밤 최고 이벤트 엿 만드는 공정에 참관하기까지는 견딜만하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 뉴욕지방에는 설날의 모습들이 많이 목격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 하는 사이에 설날은 저 멀리 지나가 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잊힘에 가속이 붙은 우리의 옛 문화들! 이러다 우리 자녀들이 뿌리 없는 자손들로 호도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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