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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구정과 신정 사이

곽애리 / 시인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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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1/23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20/01/22 16:38

두 손! 두 손을 모으면 머리가 숙여진다. 겸허한 반성 위에 곧게 일으켜 세운 첫 마음, 새 결심으로 신선한 기운을 모으는 두 손! 새해 첫날, 성당에서, 교회에서, 법당에서, 아니면 혼자 조용히 집에서 송구영신을 보내며, 맞이하며, 우리는 모두 두 손을 모았었다. 그날의 두 손에 모은 비장하기까지 한, 새 마음의 빛깔이 시간의 가속도에 붙어 더 선명해지었는가. 조금은 흐려졌는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뒤돌아본다.

거짓말처럼 1월 1일 교통사고를 낸 친구가 있다. 교통사고 이후의 처리해야 할 골치 아픈 여러 과정도 문제였지만 가장 힘든 것은 새해 정초부터 운이 안 따라 준다는 친구의 무너진 마음이었다. 그녀의 뇌 속에는 올 한해는 이미 다 망친 한 해였다. 뇌는 영악하다. 부정의 힘은 강한 부정적인 내면 대화를 몰고 온다. 검은 우울의 방을 만들고 점점 그곳으로 말려 들어가 삶을 힘들게 느끼도록 만들고, 악순환으로 끌고 간다.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명언처럼 자기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면 자기 삶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1월 1일 교통사고, 실로 극적이다. 어떻게 해도 새해부터 풀이 죽은 친구를 위로 할 수 없는 나에게 비장의 묘안은 구정이었다. “얘, 너 사고 낸 날 12월이야. 아직 새해 시작 안 됐어, 걱정하지 마.” “그러니 그렇게 생각해야지.” 힘없는 목소리에 어둠을 뚫고 작은 빛이 깜빡이며 들어오는 등댓불을 보듯 그녀의 목소리에 점차 기운이 올라왔다.

다시!! 다시는 용기의 언어다. 잠시 고개 숙인 잠재력에 불을 지피는 폭발적 에너지의 언어다. 그만, 잠시 무뎌져서, 그만, 잠시, 맥을 놓아서, 그만, 잠시 운이 없어서…. 그 어떠한 이유로든 첫 마음과 첫 방향을 잃은 자들에게 다시 할 수 있다는 이 시작은 얼마나 다행이고 위안인가. 구정(舊正)은 새 출발이다. 구정은 신정(新正)의 각오가 무너진 사람들에게 특별한 위안이다. 구정과 신정 경계 사이의 묘한 재충전의 시간적 완충을 음미하며 그 여유로움에 느슨해지고 새롭게 환해지며 인생에도 이렇게 두 번의 연극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입가에 웃음이 머문다.

그러나 한 걸음 더 성큼 나아가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마음이 하는 일, 오직, 인간이 만든 달력에 의하여 해가 바뀔 뿐, 같은 하늘, 같은 땅에서 같은 계절 속에 같은 것을 먹고, 마시고, 같은 일을 하고 잠을 자고 기도하고, 똑같은 어제와 오늘, 오직 바뀌는 것은 마음뿐이다. 그러니 매일 새해 첫날 아침으로 맞이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인간은 나약하다. 사방에 유혹하는 맛 난 것과 영상과 놀이, 온갖 즐거움의 유혹에서 자기의 길을 닦고 나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은 무너지기 쉽다. 하지만, 신정에 세운 계획을 점검하고 다시 구정의 새 마음으로 재충전 하듯 하루하루를 신정과 구정을 넘나드는 탄력성으로 살아간다면 저마다 자기만의 만족한 생 앞에 후회가 없지 않을까.

글을 쓰다 창밖을 보니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하얀 첫 마음으로 눈길에 발자국을 찍는 마음으로, 신정과 구정 사이, 세운 계획과 무너진 마음 사이를 점검하며 보석 같이 떨어지는 눈송이에 다시, 첫 마음을 포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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