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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태산명동 서일필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20/02/15  0면 기사입력 2020/02/14 15:20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 1970년대 초 한국에서 고등학교 영어 선생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게 아니다 싶어 선생질을 접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 학기 다니다 학비며 생활비 그리고 영어 소통 문제 등으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운이 좋게 한국 교포가 운영하는 시카고 야간업소에 취직되어 밤을 낮으로 삼고 정신없이 일했다. 주점 주인의 배려로 그 업소를 통해 미국 영주권을 받고, 그 주점에서 알게 된 시카고 흑인 지역에서 옷가게를 하는 사람의 도움으로 흑인 촌에 가발 가게를 열어 돈도 많이 벌었다. 흑인들 사이에 가발이 크게 유행할 때고 미국에서 한국산 가발이 판을 칠 때다.

얼마 지나 가발을 접고 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류 판매점으로 바꿨다. 장사가 잘되어 한국에서 부인과 아들딸을 데려오고, 자식들을 미국 일류 대학에 보내고, 오래전에 미국 시민권도 받고, 지금은 은퇴해서 하와이로 이주해 부인과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는 게 낙이라고 한다. 주위에서 그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미국에 이민 와서 성공했다고 한다. 옛 동창이나 같은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자식들이 다닌 명문 대학과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린다는 소문도 났다.

그는 한국에 다니러 갈 때마다 지하철에 경로우대 무임승차하는 노인들이 부러웠다. 이런 미국에도 없는 제도는 그가 한국에서 살 때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그것 외에도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는 여러 가지 복지혜택이 놀라웠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보다 더 다양하고 너그러운 것 같았다. 이제는 한국이 살만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한국 정부가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자 부부가 함께 한국 국적을 회복하겠다고 두 번이나 귀국해서 쉽지 않은 행정 절차 끝에 주민등록증과 한국 여권을 받고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기쁜 마음에 그의 국적회복을 한국에서 도와준 고교 동창생 친구 부부와 자축연도 했다.

물론 그는 영주 귀국을 해서 한국에서 노후를 보내려는 의도는 전연 없고 너그러운 한국의 노인 복지 혜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말하는 ‘더블 디핑(double dipping)’이 목적인 셈이다. 이중 국적을 갖고 은퇴 후 두 나라의 복지 혜택을 모두 받는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받는 복지 혜택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얘기고 찾을 것은 다 찾아 먹겠다는 심보라고 할 수 있다. 치사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위법은 아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경로우대 교통카드를 받으러 간 일이다. 교통카드를 손에 들고 “야, 이젠 지하철 공짜다.”라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는 국적 회복한 일을 후회한다는 후문이다. 부부가 한국에 두 번이나 다녀오는 항공요금과 호텔비만도 수백만 원이 들었고 국적회복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낸 수입인지 대금도 백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애초에 한국 여행 중에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하는 일이 부러워서 시작한 일인데 한국에 거주하지 않고 가끔 다니러 한국을 방문하는 그에게는 지하철이나 다른 교통수단의 혜택도 별로 못 보고 여러 가지 노인 복지혜택이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다른 이중국적 교포들이 한국 내에서 소득이 없다는 핑계로 한국에 거주하며 받는다는 기초연금도 해당이 안 되고, 이용하지도 않는 한국의 의료시설이지만 국민건강보험료는 매달 내야 한다. 지하철 무료승차가 ‘새 발의 피’인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최근 그의 국적회복을 한국에서 도와준 친구가 그를 보고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한다. 태산이 울리고 들썩이더니 고작 쥐 한 마리가 나왔다는 뜻인데 대단한 성과라도 나올 듯 미리 야단법석을 떨더니만 정작 초라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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