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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닫히는 문, 열리는 문

커피를 내려 머그잔에 부어 들고 거실로 향했다. 갑자기 몸이 휘청하며 들고 있던 잔을 떨어뜨렸다. 흰 카펫이 갈색으로 범벅이 되고 발에도 커피가 튀어서 발등이 따끔거렸다. 비닐봉지를 집안 내 동선에 그대로 방치했던 게 원인이었다. 무뎌져 가는 균형감각도 한몫했으리라.

해가 바뀌며 네 가지 결심을 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걸을 것. 커피를 하루에 두 잔으로 제한할 것. 사흘에 책 한 권을 읽을 것. 일주일에 시 한 편씩을 외울 것.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것.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의 끝에 청춘이 시작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가장 젊은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고 가장 늙은 얼굴로 젊은 날을 보낸다면 해마다 주름이 늘어가는 대신 점점 줄어드는 주름살, 참으로 살맛 나는 노년이 아닐까.

연초에 동갑인 바깥사돈의 와병 소식이 들려와 걱정되었고 해가 바뀌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고국의 정정도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의 날고 뛰는 무림의 고수들은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고 가시 돋친 설봉(舌鋒)을 주고받으며 일마다 대결한다. 그런데 그들 문제의 중심에 선 인사들이 굿가이거나 배드가이거나 거의가 내 모교 출신들인 사실에 놀란다.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있는 인사들은 유명 혹은 오명에 상관없이 법대 출신들이 많다.



거짓말을 한 번 하면 지탄을 받고 한 권하면 작가가 된다고 하는데 한 국가를 경영하려면 그토록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할까. 그토록 순수하던 진리의 상아탑이 세월이 흘러 '상한 탑'이 되었다는 것인가.

바깥사돈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 두 번이나 암을 이겨냈지만 이젠 체력이 바닥난 듯하다. 딸네는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도 동부 시댁에 가서 지냈고 사위는 회사를 결근하며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다. 바깥사돈은 전공은 다르지만 나와 동창이다. 인생의 한 장을 같은 시간대에 보낸 이가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간신히 잡고 있다.

낮에 딸이 와서 내 검은색 정장을 빌려 갔다. 딸은 아이들 상복도 준비하고 있다. 이 엄동에 어린 손주들을 같이 보낼 일이 걱정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떠날 때만 해도 웃으며 손을 흔들던 할아버지가 그동안 20파운드 가까이 체중이 내렸다니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을까. 그 댁에 손주가 우리 데이빗과 엘리스 둘 뿐인 것이 안쓰럽다.

데이빗은 지난 가을 중학교에 진학했다. 동네 초등학교에서는 우수했지만 유명 중학교에서도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첫 트라이매스터에 보란 듯이 올 A 성적표 위에다 교장의 상장을 얹어 가지고 왔다.

데이빗은 힘찬 출발을 했는데 바깥사돈의 생명은 사위어 가고 있다. 활짝 열리는 문과 서서히 닫히는 문.

낙조 속으로 저문 해가 스러져갈 때, 하늘은 이미 아침 해를 품고 있었나 보다.


박유니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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