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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전화 공포증'의 시대

장강명 / 소설가
장강명 / 소설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2/25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20/02/24 17:44

‘콜 포비아(call phobia)’라는 신조어를 얼마 전에 들었다. 전화 통화를 지나치게 부담스러워하고, 전화 대신 메일이나 메신저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어느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65%가 넘는 응답자가 음성 통화가 부담스러워 일부러 피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나는 일찌감치 전화 공포증을 겪었다. 신문기자 시절에는 하루에 스무 통, 서른 통 넘게 전화를 걸고 받는 날도 흔했다. 바쁠 때는 통화를 하면서 기사를 쓰기도 한다. 그렇게 전화기를 끼고 하루를 보내면 밤에 귀는 먹먹하고 마음은 너덜너덜하다.

마감 시간에 걸려오는 데스크의 전화는 기사 원고에 대해 묻는 것이리라 내용이 대강 짐작이 되니까 비교적 덜 불안하다. 새벽이나 한밤에 전화기에 팀장의 번호가 뜨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내일까지 하늘의 별을 따 와라”는 식의 황당한 지시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5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 사소한 걸 묻고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어 다른 하찮은 질문을 던지기를 반복하는 상사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살인 충동을 느꼈다. 내가 인공지능 스피커냐? 궁금한 점이나 지시해야 할 사항을 모아서 한 번에 조리 있게 전달하는 선배와 일할 때는 배려에 감격했고, 나도 그런 선배가 되려고 애썼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전화가 어떻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 하나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고, 즉시 응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압박감과 함께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수동성이다. 외향적인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전화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내향적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보다 전화로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을 더 부담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통화할 때 우리는 메시지만 교환하는 게 아니라 감정도 교류한다. 목소리와 음색을 통해 상대의 감정 상태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감정적 충돌을 피하고 싶은 이들에게 전화 통화는 그렇게 일종의 노동이 된다. 목소리만 듣는 것보다 얼굴을 마주 보는 상황에서 “싫습니다”라고 자기 뜻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더 힘들다.

성인이 되어서야 휴대전화기를 접한 기성세대보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 기기와 함께 살아온 젊은 세대가 더 전화 공포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들이 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고, 아직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측한다. 휴대폰 없는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이들을 부러워해야 하는지, 딱하게 여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마찬가지로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감각 역시 소중하기에.

내향적인 사람들을 다룬 책 ‘콰이어트’에서 저자 수전 케인은 외향적인 사람들을 찬양하는 문화가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이웃이 아닌, 모르는 이들과 일해야 했다.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호감을 주는 사람들이 유리해졌다. 낯을 가리고 수줍음을 타는 사람들은 “성공하려면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이때부터 그들은 타고난 제 모습을 혐오하고 부정하며 끝없이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초연결 시대인 오늘날에는 초 외향적인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그런 처지로 몰리는 듯하다. 사생활 공개와 실시간 응답이 점점 더 우리 시대의 성공비결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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