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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마지막 인생 담을 나의 집

이기희
이기희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2/25 15:00

나도 내가 맘에 안 든다. 다혈질에 종횡무진, 남의 말 안 듣는 고집불통에 속전속결 처리 방식, 독불장군인 단기필마의 내 모습이 진짜 싫다. 삼국지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적진을 향해 단기필마로 돌진하는 조자룡의 모습은 얼마나 멋있던가? 영웅호걸이 아닐진 데 혼자서 한 필의 말을 타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결딴이 나거나 작살 나기 십상이다.

지난 주 이사 갈 집 장만하려 샌디에이고에 갔다. 거기 사는 아들과 오랫동안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시누이 도움 받아 의기양양 출전(?)했는데 헛발질하다가 완전히 깨졌다. 한양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이 한양 사는 사람보다 한양 지리 훤히 꿰고 있는 법. 그 동안 인터넷 뒤지며 습득한 알량한 지식에 돈키호테식 편견과 고집불통을 범벅해 안하무인식으로 우기며 좀 괜찮은 집 나타나면 오퍼 넣자고 덤벼들어 아들과 시누이를 곤혹스럽게 했다. 물론 이번에 졸속으로 덤비는 데는 내 성격적 결함도 있겠지만 안절부절 오락가락 좌충우돌 하는 내 모습 뒤에는 미래에 대한 초조함, 내 선택이 주는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이리저리 아들과 시누이를 벼랑 끝으로 내몰며 설쳐대다가 자포자기 ‘살 집과 배필은 하늘이 지어준다’는 어머니 교훈을 따르기로 하고 숨고르기를 한다. 살 집을 장만하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고 결단이라는 말이다. 30년 전 큰 집을 지으려고 안달 했을 때도 ‘사람이 집을 이겨야지 집이 사람을 이기면 안 된다’며 분수와 형편에 맞는 집을 장만해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초등학교 문 앞에 가방 끈도 매달지도 못한 무학의 어머니는 어찌 구구절절 지당한 말씀만 하실까.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는 도시라서 집에 필이 꽂히니 돈이 안 맞고 돈에 맞추려니 집이 맘에 안 들었다. 시누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곳에 오퍼 넣었다가 원래 공시 된 가격에 웃돈 얹어준 바이어에 밀려 이래저래 발품만 팔고 돌아오는 비운 아닌 행운을 맞았다. 새옹지마! 비운을 행운으로 바꾸는 건 사람들의 입이고 도움이고 운명을 맞이하는 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시누이는 눈앞에 벌어지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참고 기다리면 형편에 꼭 맞는 좋은 집이 나타날 거라며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그 집들을 사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귀를 틀어막고 있을 때는 안 들렸는데 듣고 보니 반대하는 시누이 말이 백번 옳았다. 그리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나는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래서 절대로 네 사업에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이 곳 부동산 시장에서는 난 베테랑이다. 네 마지막 인생을 정리할 집이니 서두르지 말고 함께 찬찬히 찿아보자. 넌 네가 모든 걸 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야.”

내가 얼마나 극성을 부렸으면 양같이 순하던 시누이에게 이런 교훈까지 들었을까.여하튼 깨지려면 바닥까지 자빠져야 온전히 바로 설 수 있다. 그동안 지은 죄가 많아 타박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한다. 받은 커미션은 몽땅 내 통장으로 도로 넣어줄 거니까 백번 꾸중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아끼며 필요한 사람에겐 큰 손이 되던 그녀. 두 자녀를 하버드대학과 대학원 보내고 하버드대학과 대학원 나온 사위와 며느리 얻어도 자랑하지 않는 그녀. 그동안 약간 촌티 나게 산다고 내려 보던 눈을 위로 올린다. 집 사서 이삿짐 올 때까지 초간단하게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필수품 챙길 이민가방 구할 궁리를 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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