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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민화 속의 테크놀로지

지난 3월 첫째 주에는 현대미술의 가장 최신 작품을 선보이는 아무리 쇼가 뉴욕의 허드슨 강가 피어 94에서 열렸다. 올해에도 멀티미디어를 표현방식으로 삼은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어 미술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3월 둘째 주에는 아시아위크가 열렸다. 뉴욕한국문화원은 2020년 아시아위크의 주제로 민화 특별전을 기획했다. 서울에서는 신사동 호림박물관에서 책가도와 문자도를 중심으로 ‘민화의 사계’ 전시가 열린다. 우리 대학에서도 민화의 기법과 소재를 잘 보여주는 밑그림을 포함한 민화전을 기획해 보았다. 같은 기간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 감염증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발표하였는데 건강과 안전을 염려하는 세계인들에게 ‘민화’라는 소재가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민화는 대중의 행복과 장수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갈망과 풍요로운 물질문화를 동경하는 마음을 잘 드러낸다. 문자도에서 보듯이 효-제-충-신의 유교적 가치를 전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책가도(혹은 책거리)에서 당대의 책과 문구류, 서가의 모습과 함께 호사스러운 사치품과 수입 물품 등을 빼곡히 그려 넣었다. 그래서 책가도는 단연 인기였다. 19세기 후반 책가도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테크놀로지의 상징물은 안경, 탁상시계(자명종), 망원경 등이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의 연구서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안경, 망원경, 자명종으로 살펴보는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는 조선 시대 후기 들어온 안경·망원경·유리 거울·자명종·양금(洋琴: 사다리꼴 상자 위에 56개의 쇠줄을 얹고 대나무 활로 켜서 연주하는 현악기)의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이 얼마나 관심의 대상이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탁상시계는 17세기 중국 청나라 강희제의 수집품에 수백 점이 들어간 이후 서구식 기계문명을 대표하는 사물이 되었다. 안경 또한 선망의 대상으로서 안경이 없으면 안경집이라도 민화의 책가도에 포함되곤 하였다. 줄을 매달아 아름답게 만든 안경집은 다른 문구류 및 귀중품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삼성 리움미술관 혹은 국립민속박물관의 민화에서 보듯이, 안경은 대개 펼쳐진 책 위에 올려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다리 없이 코에 걸치는 동그란 두 개의 렌즈만 있는 옛날 안경이다.



자명종과 안경 등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물을 넣은 민화가 제작되던 19세기 후반은 유럽과 북미의 몇몇 나라들은 급속한 테크놀로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1850년대 뉴욕에서 오티스 형제는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화물 및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발명했고, 1880년대에는 독일 발명가 베르너 폰 지멘스(Werner von Siemens) 등이 전기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 1878년에는 토마스 에디슨과 제이 피 모건,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등의 사업가들과 함께 상업적으로 대중에게 전구와 전력을 공급했다.

동시대 서구의 미술 작가들 또한 기계적 문명을 창작에 도입했다. 1850년부터 상용화된 카메라로 사진 찍는 풍습이 유행하면서 일부 미술가들은 사진을 어떻게 회화처럼 보이도록 할지 모색했다. 이러한 사진의 새로운 발전을 ‘회화주의 사진운동’ 혹은 ‘픽토리얼리즘 (Pictorialism)’이라고 한다.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랜더(Oscar Gustave Rejlander)의 1857년 작 ‘인생의 갈림길’은 픽토리얼리즘의 대표작이다. 포토샵과 같은 이미지 편집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초보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30장이 넘는 사진을 모아 한장의 인화지에 옮겨서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 같은 구도의 벽화 같은 사진을 만든 이 작품은 당대 테크놀로지를 예술로 끌어올린 창조성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들 19세기의 픽토리얼리즘의 작가들은 그들과 동시대에 그려진 한국의 민화 ‘책거리’를 알지 못했을 터이다. 과학적 진보와 행복을 위한 민중의 소망이 더더욱 간절한 2020년 봄 뉴욕에서는 레일랜더의 후예들과 한국 민화 작가의 후예들이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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