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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저녁의 평화

물먹은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시인의 ‘묵화’ 전문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 세수를 한다. 주변을 정리하고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조명등을 켜고 책상에 앉는다. 하루에 한두 챕터씩 읽어가는 성경을 읽고 구독하고 있는 월간지나 읽다가 펼쳐놓았던 책들을 뒤적이기도 한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유튜브 영상을 보기도 한다.

이 저녁시간이 나는 좋다. 가장 순해지는 시간이다. 겸허해지기도 한다. 몸이 마음에게 마음이 몸에게 아무 저항 없이 스미는 때이다. 뭣보다도 마음의 평화가 잔잔히 찾아온다. 하루를 잘 살았다는 뿌듯함과 감사함으로 자기애에 취해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남편이 아내의 등을, 아내가 남편의 등을 토닥이며 “수고 했어요” 라고 하는 말의 온기가 좋다. 고요에 휘감기는 적막도 나쁘지 않다.



저녁을 위해 하루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는 저녁 숭배자다. 낮 동안의 부대낌이나 피로감조차도 감미롭다. 따져보자면 내세울 것이 없는 하루였음에도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처럼 넉넉하다. 아늑하게 감싸주는 불빛 속으로 노곤노곤 이완되는 심신의 무방비도 좋다.

인생의 육십 대는 하루 중 저녁때라고 생각된다. 조금은 환하고 조금은 어둑한, 그래서 스위치를 올려 불을 밝혀야 하는. 저녁은 어둠의 시작이기도 한다. 어두워진다는 것에는 쓸쓸함이 동반된다. 그래서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절벽 앞에 서있는 위기감으로 우울을 겪어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시절이 주는 평화는 저녁이 주는 안도감이나 행복감과 유사하다. 조금은 멀리 볼 줄도 알게 되었고 가까이 있는 것들도 찬찬히 바라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낭패감 없이 인정할 줄도 알고 불필요한 거품들을 거품으로 인정하고 걷어낼 줄도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기보다 살아온 시간들이 그렇게 유도하고 있다. 나이가 주는 선물이다.

육십 대를 살고 있는 나는 지금을 인생의 전성시대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성취했거나 획득해서 누리는 전성기가 아니라 삶이 주는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감성지수가 최고치이기 때문이다. 엄마, 아내, 딸이라는 임무에서 비껴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떠하든 누릴 수 있는 게 많더라는 삶의 독법을 얻었기 때문이다.

돋보기를 써야 분명해지는 글자들처럼 시력이 약해지면서 환히 보이는 삶의 가치들이 있다. 삶은 완벽한 형태로 나를 초대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일면은 굽었고 일면은 일그러져 있다. 그럼에도 마냥 족한 것은 마음이라는 뜰채로 건져 올리는 일상의 값짐을 전적으로 수긍하기 때문이다.

물먹는 소의 등에 손을 얹고 발잔등이 부었다고 적막하다고 말하는 할머니는 한 폭의 묵화이다. 무채색 같은 소박한 하루를 살았을 것이고 삶이라는 수레를 함께 끄는 동행을 향한 사랑과 연민으로 저녁을 맞을 것이다.

저녁과 육십 대는 변덕이 없고 가탈스럽지 않다. 민낯의 시간이다. 오래 입어 올이 성글어진 면바지의 유연함처럼 몸의 파동을 거북해 하지 않고 받아준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삶의 행간을 읽어보게 하는 시간이어서 좋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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