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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시간 여행

시카고에 11월이 오면 썸머타임이 해제되고 사위어가는 연노랑의 겨울 햇살이 머무는 시간도 짧아진다. 오후 다섯시경이 되면 창가는 이미 어둑해지고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헤아리게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계령이 다시 강화되었다는 뉴스 때문인지 저녁 시간에 찿아드는 어둠은 한층 완강하게 집밖 세계와의 경계를 장식한다. 전염병의 사태를 반년 넘게 겪어오면서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날마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소식과 고립된 생활의 규범화는 여전히 생소하기만 하다.

단조롭고 단절된 생활이 계속되는 과정에서도 감사할 조건들은 찿아진다.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관계 사업을 하는 아들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시카고에 와서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학 진학을 계기로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된지도 어언 10여년이 넘었다. 한 해에 햇수로는 두어번 재회가 이루어지고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을 다 헤아려도 몇 주가 채 안되었었다. 재택근무기간에도 주중에는 여전히 업무로 바쁘지만 온전한 주말을 아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몇 개월의 세월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기대치 못한 선물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지속적으로 서로 알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담긴 투자가 있을 때만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은 가족 일원 간에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이라고 해서 저절로 개개인에 대한 이해력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인위적인 노력 없이도 우러나는 애정과는 별도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해의 측면은 개척이 요구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에서 주고받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살핌 외에 객관적인 이해와 인간적인 앎은 서로가 들려주는 마음의 내용 그리고 각자가 살아온 시간에 담긴 이야기를 나눌 때에만 가능해진다.

여유 있게 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아무런 이해타산이 섞이지 않은 추억담을 풀어내게 되고 각자의 상상력과 함께 그려보는 세계 속에서 아 하의 순간들을 표현하며 장단을 맞출 수도 있다. 아들이 모르는 엄마의 고향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이 주가 되다가 매 주마다 한 편씩 추억이 담긴 영화를 선정하여 보기로 했다. 하버드 교정이 나오는 러브스토리를 함께 보면서 중학생이던 엄마의 눈으로 보았던 영화라는 감상을 더해보는 아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스토리 전개가 옛날식이라고 웃으면서도 어느 시대에나 찿아지는 순수한 시절의 감정에는 동감하고 엄마에게도 영화의 주인공들보다 어린 시절에 그 영화를 보며 설레던 시절이 있었음을 아들이 새삼 실감해보는 기회. 닥터 지바고를 함께 볼 때는, 바리끼노의 농가에 핀 노란 수선화가 화면 그득 채워지는 장면에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 거 같다고. 왜냐고 되묻지 않고도 나 역시 아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화면에 깔리는 라라의 테마는 아들의 유년의 추억에도 익숙한 멜로디다. 제임스 본드 영화를 시리즈로 보고, 이소룡 영화를 보고, 네플릭스에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화면을 통한 여행은 계속된다.



영화와 함께 아들과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여행자들처럼 다른 시간대를 함께 방문하며 공감하고, 질문하고, 의견을 피력하며 즐거운 여행객이 된다. 무엇보다도 화면에 함께 몰입하면서 서로에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감지하면서 마음에 든든한 축대가 쌓이는 기분이 된다. 모국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세대가 다른 엄마와 아들이 감상과 감정과 추억의 공통분모를 만들어가며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살뜰히 차린 집밥을 함께 먹고, 함께 경험하는 시간 속으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면 장기화되는 팬데믹도 살아낼 만 하지 않겠는가. [종려나무교회 목사, Ph.D]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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