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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감사로 시작하는 오늘 하루

매년 추수감사절이 오면 기억나는 광경이 있다. 청교도들이 무모한 도전 끝에 신대륙 개척의 첫발을 디딘 플리머스 항과 언덕 위에 조성된 예배당, 움막 같은 초창기 생활 촌이다.

그곳은 400년 전 102명이 한 무리 되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라는 목선 하나에 의지한 채 대서양을 종단, 모진 추위와 굶주림, 질병, 죽음이 기다리는 암흑 그대로의 땅을 찾아온 용감한 경이로움과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교차하는 감동의 역사 현장 바로 그곳이다.

그들의 무모한 도전과 무수한 희생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미국이 가능했을까? 하는 쓸데없는 의구심을 올해도 반추하며 2020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 추수감사절을 기다린다.

청교도(Puritan)라는 말은 교황 중심주의로부터 루터의 종교개혁에 기반을 둔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의 순결(Purity)과 복음주의를 추구하던 급진주의 개신교도들을 칭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역사적 배경은 1534년 영국의 헨리 8세가 공표한 수장령(Acts of Supremacy)이다. 수장령이란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이 영국에서 결실을 본 한 형태로 로마의 교황 휘하를 떠나 영국 왕을 수장으로 한 국교회가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정치 종교적 독립선언문 같은 것이다. 그런데 국교회가 종교개혁을 지지하고 스스로 독립을 선언하며 독자적인 길을 간다지만 실상은 여전히 가톨릭의 의식과 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에 저항하고 반발한 집단이 청교도다. 자연히 이들은 심한 박해를 받았고 일부는 박해를 피해 자신들만의 신앙공동체 속에 바르게 신앙을 지키며 살기 위해 아예 네덜란드에 이민을 떠난다. 그러나 네덜란드 또한 그들이 원하는 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분노케 한 것은 자신들의 청교도 신앙을 이어 살아야 할 자녀들이 점점 네덜란드의 불신앙 속에서 세상 이질 문화에 점점 익숙해가는 모습이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 했던가?

그들은 네덜란드를 떠났고 1620년 9월 16일 영국 남서부 플리머스 항에서 생명을 건 신대륙을 향해 돛을 올린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승선원 102명 중 35명이 청교도였고 나머지 67명은 비청교도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의기투합했고 항해 중 성인 남자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신대륙 정착 후 정부수립과 사회생활의 기초가 될 서약(May Flower Compact)을 통해 훗날 미합중국 헌법의 기초가 된 평등, 자치, 공정한 법에 의한 통치를 약속하는 위대한 문서를 남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사실 그들의 원래 목적지는 버지니아였지만 여호와는 뉴잉글랜드로 그들을 인도하였고 9주간의 항해는 승선원 절반이 죽어 나가는 아픔의 길이었다.

감사할 것을 감사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청교도의 감사는 감사할 것에 대한 감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죽음의 시선이 교차함에도 그들은 첫 열매로 여호와께 Thanksgiving 예배를 드렸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 나는 오늘 아침도 커피 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으로부터 ‘Thank You’ 하는 기분 터은 인사를 받아 마음따뜻하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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