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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특별한 인연의 고리

코로나바이러스로 바뀐 일상과 은둔 생활에 조금씩 기운이 빠지면서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해졌다. 세상의 어떤 부와 명예보다 가족이 소중했다.

보고싶은 자손들을 만나는 꿈을 자주 꾸다가 여름부터 “가을에 만나서 밥 함께 먹자”고 딸들을 부추겼다. 바이러스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자는 딸들에게 추수감사절 전에 있는 남편의 생일날은 꼭 함께 지내자고 강조했다. 깐깐한 큰딸이 “모이기 전에 집집마다 한사람이 대표로 코비 테스트를 받자”는 조건을 내세웠다. 둘째딸네는 선뜻 응했지만 우리는 머뭇거렸다. 막상 11월에 들어서 날짜가 가까워지자 둘째 사위와 큰딸은 테스트를 받았다. 우리는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 왜 테스트를 받느냐고 남편은 완강히 거부했다. 그렇게 미적거리다 큰딸이 모임을 취소한다는 협박에 굴복해서 남편이 테스트를 받았다.

8개월만에 나를 본 3살짜리 손자가 큰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뛰어와 나에게 안겼다. 훌쩍 큰 아이를 안고 나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워싱턴D.C. 에서 장거리 운전으로 애틀랜타로 내려와 나를 꽉 껴안은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도 아이가 태어난 후로 매달 만나다가 지난 3월 이후 만나지 못해서 그리워하던 터라 기뻐서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잘 자란 아이가 무척 예뻐서 눈물이 났다.

나는 첫 손자와 특별한 인연의 고리를 가졌다. 큰딸이 결혼한 후 경력을 쌓느라 처음 몇 년은 출산을 미루었고 어느정도 안정되자 아이를 원했지만 쉽게 임신이 되지 않았다. 딸의 친구들이 모두 엄마가 되자 조바심을 가진 딸은 난임병원 도움까지 받았지만 그것도 실패하자 포기하고 일에 몰두했다. 딸이 아이를 원했듯이 나도 손주를 원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번이나 걸으면서 지나는 길에 있는 성당마다 들러서 딸에게 아이의 축복을 주십사고 기도했다. 나의 기도탓인지 딸은 임신했다. 내가 딸의 임신은 하느님의 축복이라 자랑하니 사위는 피식 웃었지만 난 절대적으로 기도의 힘을 믿었다.



출산일 가까이 딸네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는데 내가 출발하기 이틀 전에 양수가 터져서 딸은 병원에 갔다. 표를 바꿔서 바로 떠나고 싶었지만 한달 집을 비울 준비가 끝나지 않아 그러질 못했다. 아이는 산모를 궁지로 몰며 버텼다. 워싱턴 레이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갔다. 오랜 진통에 딸은 지쳐 있었지만 마치 나의 도착을 기다린 듯이 그날 손자는 세상에 등장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이의 첫 기저귀도 내가 갈아주고 딸과 아이의 병실에 함께 머물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한달 동안 내가 찍은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혼자 희죽희죽 웃었다. 그후부터 몽고메리에서 워싱턴D.C.의 직항 노선을 이용해서 매달 아이를 만나러 가는 바보 할머니가 됐다. 기어서 나에게 다가오던 아이가 뛰어와서 “할머니 I love you!” 외친 날 우리의 사랑은 완벽했다.

오랜만에 본 아이는 질문을 많이 했다. 왜 사람은 늙고 죽는지 또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는지 등 예기치 않은 질문은 나를 놀라게 했다. 코로나19가 아이의 마음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워서 안타까웠다. 조지아 수족관을 돌고 블루 헤론 자연보호구역의 트레일을 걸으며 아이의 마음에서 잿빛 어두움을 떨쳐내려 애썼다.

둘째 사위의 할머니는 외아들이 결혼해서 안겨준 첫 손자를 깊이 사랑해서 손자가 성장하는 과정의 기록을 모아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손자가 성인이 되어 만난 내 딸도 사랑한 그녀는 올해 증손자를 페이스타임으로 만나 무척 기뻐했다. 2년전 영국에서 나도 그녀를 만났었다. 헤어질 적에 내 손을 꼭 잡고 “내 손자를 부탁해” 해서 나를 울린 그녀가 지난주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족이 모여서 추수감사절 음식을 미리 먹으면서 흥겹게 놀다가 영국에서 온 비보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발코니에 나가서 혼자 슬픔을 삭이는 사위의 뒷모습에 옆에서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어른거렸다. 마치 훗날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듯 나도 마음이 아팠다.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어린 손자와 헤어졌다. 나도 둘째 사위의 할머니처럼 내 손자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어떠한 성인이 되는지 또 어떤 여자를 사랑할지, 죽기 전에 그들이 낳은 아이를 볼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영 그레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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