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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이를 갈다

사람이 이를 가는 것은 왜일까요? 제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는 오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를 간다는 표현이 국어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어서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보여주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가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공격을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악무는 것이 이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의 자세라면 이를 가는 것은 이를 날카롭게 해서 공격을 하려고 하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를 간다고 곧바로 공격에 사용할 수는 없기에 평상시에 준비하는 과정일 수 있겠습니다.

우리말에서 이를 간다는 표현은 주로 복수를 다짐하거나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장면에서 쓰입니다. 복수의 의미에서 이를 가는 것은 마치 칼을 가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칼은 내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이빨은 내 속에 있는 것이어서 언제나 복수의 준비를 하는 모습입니다. 그 생각만 하면 이가 갈린다는 말을 하는 경우에는 몸서리쳐지는 분노나 괴로움을 만나게 됩니다. 갈린다고 표현하는 것을 봐서는 내가 능동적으로 이를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나를 참으로 수 없게 해서 이를 갈게 만든다는 의미를 보여준다. 이가 갈리는 일에는 분노가 느껴집니다. 화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이를 갈고 있는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갈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과 있으면서 이를 가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합니다. 물론 아이들을 보면 버릇처럼 이를 갈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빨이 커지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이를 날카롭게 만들어야 했던 원시의 기억이 이를 갈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공격력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 중에는 이렇게 공격적인 게 많습니다. 인간의 본능일 수 있습니다.

이를 가는 것이 밖으로 나타날 때는 주로 잠잘 때입니다. 잠을 잘 때 이를 가는 사람은 좀 무섭기도 합니다. 빠드득 소리 때문에 옆 사람이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때로는 코 고는 소리보다도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다. 작지만 반복적으로 소리가 나서 신경을 건드립니다. 자면서 이를 가는 경우도 단순한 버릇일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가 쌓여서 나타나는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울함이나 분노가 자면서까지 새어 나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공격성이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스트레스가 내 무의식을 조작하고, 내 무의식은 자면서까지 스트레스 속에서 이를 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문득 스트레스와는 전혀 상관없이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납니다. 자면서 쩝쩝거리는 사람도 있는데 무언가 먹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트레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식욕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짓누르고 있는 스트레스로 자면서까지 공격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왠지 서글픕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꿈이면 즐거웠겠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 위로가 됩니다.

어젯밤에 자고 있는데 아내가 무슨 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저를 깨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를 갈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잘 때 코는 많이 고는 편인데, 이를 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아내는 저의 이 가는 소리가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잠에서 깨어 내게 남아있었을 무의식을 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보니 이를 갈면서 주먹도 쥐고 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심장도 마구 뛰고 있었네요. 자면서도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도 이를 가는 바람에 아내가 나를 깨웠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네요. 이를 갈았다는 게 갑자기 고마워졌습니다. 내 괴로움의 신호가 된 셈입니다. 다음에는 맛있는 것을 먹는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때는 깨우지 않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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