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열린광장] '지식'만 난무하고 '지혜'는 상실되다

누군가 말했다. "21세기 문맹(文盲)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잊어버리고, 다시 배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동감이다. 현대는 최첨단 문명시대다. 이 시대는 매 초마다 엄청난 정보가 생산된다. 이들 정보는 곧바로 스마트폰에 담기고 사람들은 이들 정보를 소비한다.

이처럼 시장의 신속한 정보유통 때문인가, 사람들은 지혜를 축척하는 일에는 열정이 없어 보인다. 대신 지식 추구에 대한 욕구는 대단하다. 이같은 비장함은 21세기 생존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단 한시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지구별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들이 그 마술상자(스마트폰)안에 있지 않은가. 다섯 살배기 꼬마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주고 "진리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물으면 수 초 안에 정확한 답을 내놓는다. 실제상황이다. 이것이 바로 최첨단 메커니즘으로 무장한 채 일상을 사는 21세기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지혜는 없고 지식만 범람하는 시대에는 사람들의 대화도 획일적이다. 그게 그거란 뜻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오성다방(스타벅스 속칭)에서 '박근혜 스캔들'과 관련된 설전이 벌어졌다. 한데 이들이 침 튀기며 쏟아내는 설왕설래의 대부분은 정보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내용들의 짜깁기다.



2400여 년 전, 소크라테스는 짜증이 날 정도로 집요하게 물었다. "이 보시게! 방금 그대가 말 한 그것의 뜻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마술상자에서 꺼낸 지식으로 대답하는 21세기 현대인을 향해 시장 정보가 아닌, 퍼스널 대답을 요구했던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지식을 꺼내 쓰는 21세기인들. 어느 여중학교 교단에서 선생이 질문을 했다. 순간, 교실 내 모든 여학생이 로봇처럼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했다. 그러고는 똑같이 대답을 했다 한다.

지식을 탐구하고 지혜를 축적하는 학당에서 명철(明哲)은 고사하고, 점점 더 동물농장이 돼 가고 있음을 본다. 어느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일이다."

현란한 조어로 지식 소비자들을 매료시키는 언변사들이 넘쳐난다. 매우 영리한 이들은 자신들의 재주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이를 정보 시장에 신속히 유통시켜 명성과 부를 취한다. 21세기 인들은 이에 열광한다. 그러고는 아무런 검증 없이 언변사들의 지식을 스마트폰에 저장한 뒤 공유한다. 영락없는 앵무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 하나. 맥다방(맥도널드 속칭)에서 시비가 벌어졌다. 시비의 발단은 이랬다.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후덕하게 생긴 한인 할머니가 말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작가는?" 그러고는 자신과 함께한 시니어들의 안색을 살폈다. 질문을 받은 노인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다. 명색이 대학물을 먹었다는 그들이었다. 이때, 어느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러고는 허리춤에 걸친 삼성 갤럭시 7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10초 후. 할아버지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누구 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지!"라고 말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지식의 껍데기만 취할 뿐, 속 알맹이를 쌓는 노력은 게을리한다. 맥다방에서 목격한 "스마트폰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는 할아버지의 항변이 다시 오버랩된다.

지혜는 없고 지식만 유통되는 사회는 불안하다. 지식은 사람들의 언변을 수려하게 만들지만 지혜는 사람들의 인격을 우아하고 만든다.

이산해·소설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