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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낡은 운동화 못버리는 까닭

김영애

운동화 엄지 발가락 부분에 구멍이 났다. 세 켤레 모두 새것일 때는 빛깔과 맵시를 뽐내던 것들이다. 힘든 삶을 걷고 달리다 온몸이 상한 운동화들. 순간마다 맨몸으로 삶을 마주한 탓에 상처나 찢어지며 구멍까지 생겼다.

내가 헌 운동화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발에 편하기 때문이다. 모습은 닳고 낡았지만 내 발가락의 모난 부분을 눈감아 주고, 삐뚤어진 발을 포근히 감싸 준다. 팔자걸음에 외골수로 틀어진 발을 삐뚤다고 나무라지 않고 흉하게 딱딱해진 굳은살까지 따뜻하게 품어준다. 온몸이 쭈그러진 주름투성이의 운동화지만 어머니의 따스한 가슴을 닮은 것 같다.

새것일 때는 발과 맞지 않아 얼마나 서로 할퀴고 부딪치며 상처를 냈을까. 하지만 거친 삶을 동고동락해서인지 내 발과 그것은 적응하며 동화되어 어느덧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구멍 난 마사이워킹 스니커를 바라본다. 밑창이 둥글게 부풀어 삐딱삐딱한 그것은 예측하기 힘든 삶을 닮았다. 몸의 중심을 앞으로 기울이면 미끄러질 듯싶고 뒤로 젖히면 넘어질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삶같이 온몸을 뒤뚱거리게 하다 영혼까지 흔들어 놓는 운동화. 평탄치 않은 밑창은 순간의 삶이지만 엉성하거나 우습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쩌면 그것은 삶의 걸음도 매 순간 조심해야 됨을 알려 주는지도 모른다.



우그러진 운동화, 둥글고 넓적하게 닳아버린 스니커들. 퇴색한 그것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삶에 지친 사람들 같다. 거친 세파에 몸이 패고 뒤틀리는가 하면 주름이 생기다 못해 온몸이 무너지며 힘겹게 삶을 견뎌낸 모습이다.

운동화는 거친 땅에서 발을 보호하려 생겨난 작은 집이다. 삶이 자신의 둥지에서 잠시 안주하다 떠나는 것이라면, 운동화도 움직이는 동안 발이 머무는 작은 보금자리다. 인생을 닮아 생로병사가 생존하는 운동화. 새롭게 태어나 힘들게 일하다 늙는가 하면 병에 걸려 제 구실을 못한 채 죽음으로 세상에서 버려진다. 신을 벗으면, 인생을 잠시 내려놓은 듯 편해지는 것은 그 안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운동화는 어둡고 밝은 인생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그것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변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들. 운동화는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현재를 걸어간다. 지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앞서지도 않으며, 현재에만 충실하게 집중한다. 삶은 수많은 현재가 모여져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운동화는 몸의 가장 낮은 곳에 겸손하게 신겨져 지구의 바닥인 땅 위에서 걸음을 시작한다. 눈에 띄지 않은 제일 낮은 곳에서 자신을 낮추며 하심(下心)하는 것이다.

더러움이나 정함을 가리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삶을 행보하는 운동화. 나는 언제쯤이면 영혼이 숙성된 그것처럼 세상을 마찰 없이 받아들이고, 삶이 필요로 할 때마다 용기 있게 걸어 나갈 수 있을까. 오늘 헌 운동화 몇 켤레가 내게 생의 의미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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