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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 중화 민족주의 … 갈등 생긴 공간에 묶어 관리해야

냉전 후 펼쳐진 세계화 시대에서
속속 귀환 중인 강대국 민족주의
러시아와 일본, 인도, 미국과 함께
중국도 중화 민족주의 다시 등장

시진핑이 불러낸 중화 민족주의
반부패나 정치개혁에 도움 되나
중국 입지 좁히는 부작용 또한 커
문제 발생 영역에 한정해 풀어야


강대국 민족주의가 속속 귀환하고 있다. 냉전을 지나 세계화를 맞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민족주의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역사 무대 앞에 서게 됐다. 특히 이웃한 중화 민족주의의 빠르고 거센 굴기는 우리에게 커다란 부담이다. 민족주의 이론가 워커 코너는 민족주의의 결집은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논리를 넘어선 그 무엇이라고 말한다. 중화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어떤 도전이 될 것인가, 우리는 또 어떻게 응전해야 하나.

강대국 민족주의의 귀환

2012년 5월 러시아의 제6대 대통령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이 돌아왔다. 푸틴은 강한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바라는 민족주의 러시아의 '차르'다. 11월엔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요구하는 '중국꿈'을 주창했다. 그에게선 과거 세계 최강이었던 영광된 제국으로의 복귀를 위해 현재의 패권국 미국과 마주하고 있는 '중화제국의 황제'라는 이미지가 투영되고 있다.



아베 신조 내각의 일본은 2015년 9월 참의원에서 안보법안을 통과시키며 사실상 전쟁이 가능한 '정상국가'가 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역시 복고적 민족주의가 한몫했다. 영국이 EU의 28개국 중 하나에 불과하다기보다는 19세기 세계를 주름잡았던 대영제국이라는 향수가 영국인의 마음을 자극한 것이다.

어디 이들뿐인가. 오토만 제국의 영광을 꿈꾸며 '21세기의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힌두 민족주의 운동을 이끌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강대국 민족주의의 귀환 기류에 정점을 찍은 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지난달 20일 미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일 것이다.

중화 민족주의의 근원

이런 국제사회의 도도한 물결을 타고 중화 민족주의 역시 중국 근대 역사에서 세 번째 부름을 받아 역사의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중국은 '중화'의 의미를 지리적, 문명적, 민족 정체성 개념으로 진화시켜 왔다. 이 중 민족 정체성은 북방 민족과 구분되는 한족의 정체성을 가리킨다. 북방 민족이 초원을 이동하며 유목생활을 해온 데 반해 한족은 농경문화에 따른 정착생활을 기반으로 했다.

특히 한족 명칭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한나라를 거치며 전통적인 중화민족의 정체성은 한족 중심의 배타성을 띠게 됐다. 이로 인해 북방 민족이 중원을 차지하던 시기엔 한족 지도자들이 '오랑캐'를 몰아내고 영토와 왕조를 회복하기 위해 한족 중심의 '중화민족' 개념을 정치적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근대 역사의 첫 번째 부름

청조 말기 유럽에서 전해진 근대적 '민족(nation)'과 '민족주의(nationalism)' 개념은 일본에서 '민족'으로 번역됐다. 이런 근대적 민족 개념을 중국에 처음 도입한 이가 량치차오다. 랑치차오는 캉유웨이 등과 함께 일으킨 '변법자강' 운동엔 실패했지만 이후 망명 생활을 하며 중국 내 한족과 소수민족을 통합하는 새로운 '근대적 중화민족'의 개념을 제시했다.

량의 중화민족 개념은 한족 중심의 배타적인 '소(小)민족주의'와 한족은 물론 당시 중국 내 대표적 소수민족인 만주족, 몽고족, 회족, 묘족, 장족을 포함하는 '대(大)민족주의'의 둘로 나뉜다.

그는 처음엔 유교 사상을 중심으로 한족 중심의 개혁을 통해 중국을 서구 열강의 침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후엔 모든 중국인이 힘을 모아야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결론 짓고 '대민족'으로 중화민족을 정의했다.

쑨원 또한 1912년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에 오르게 되자 기존의 한족 중심주의에서 탈피해 한족과 소수민족인 만주족, 몽고족, 회족, 장족 등 5개 주요 민족으로 구성된 중화민족이 민족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오족공화론'을 주장했다. 바로 이런 량치차오와 쑨원의 '근대적 중화민족' 개념을 법과 제도로 완성한 이가 마오쩌둥이다. 마오는 공산 혁명에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포함된 중화민족의 해방을 역설했다. 또 건국 후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임을 중국 헌법에 명시했다.

애국·민족주의의 정치적 활용

중국 근대 역사에서 중화 민족주의가 다시 부름을 받은 건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냉전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역사적 실험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대내외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감과 역할이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밖으로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몰락을 지켜보던 중국의 지도자들은 안으로는 더 많은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89년 6월의 천안문 사태에 맞닥뜨리게 됐다. 중국 지도자들에겐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중국 지도부의 선택은 중화 민족주의를 애국심과 결합시킨 애국·민족주의의 정치적 활용이었다. 이에 따라 중화 민족주의는 그간 공산주의 사상이 맡아왔던 공산당의 정통성과 리더십을 유지하는 한편,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하나로 묶는 정치적 임무까지 넘겨 받으며 다시 역사의 조명을 받았다.

'양날의 칼' 민족주의 딜레마

시진핑 시기 중화 민족주의는 중국 근대 역사로부터 세 번째 부름을 받은 것이다. 우선 국제 환경이 중화 민족주의의 부상을 거들고 있다. 여타 강대국들의 민족주의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잇따라 귀환하고 있는 게 중화 민족주의의 굴기에 우호적인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가 외치는 중국꿈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바라보는 국제적 시선이 삐딱하기만 한 건 아니다. 중국 경제의 부상에 업혀 덕을 보는 나라가 늘어날수록 중국이 옛 영광을 되찾겠다고 나서는 걸 그러려니 하고 바라보는 분위기다.

국내적 여건도 나쁘지 않다. 특히 경착륙이 우려되는 경제 환경 속에서 반(反)부패와 정치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하는 데 중화 민족주의 기치를 내거는 건 나름 효과가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중 견제 돌파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중화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2014년 3월 29명이 사망하고 143명이 부상한 윈난성 쿤밍의 기차역 테러 등 소수민족 문제는 여전히 중국의 정치적 불안 요인 중 하나다. 이는 중화 민족주의를 강조할수록 오히려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려는 소수민족들의 저항이 커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론 민족주의에 기인해 국제 사회에서 '강한 중국'의 모습을 바라는 국내 정치적인 요구 때문에 중국 외교에서 협상의 폭이 줄어드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 특히 주요 강대국들과는 물론 이웃 국가들과도 갈등이 생길 경우 중국 지도부는 민족주의 그룹들의 요구 탓에 전략적으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게 됐다.

민족주의를 한정된 공간에 묶어라

시진핑 지도부는 아직은 중화 민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정치적 도구를 찾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면 중화 민족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문제로 냉각된 중국과의 관계를 한국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또 동북공정' 등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양국의 민족주의적 갈등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민족주의적 갈등 요소는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민족 간 극한 대립을 부른다. 일부 정치인은 국민의 충성심 결집을 노리고 민족주의적 대립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면 민족주의적 갈등은 그 요인을 가능한 한 한정된 공간으로 유도해 관리해야 한다.

문화적 대립이 나타나면 문화 교류의 공간에 놓아두고 경제와 안보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화적 대립을 경제적 보복으로 갚아준다면 장기적 측면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정부 또는 지도자는 지혜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런 예는 지나간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갈등의 원인 또한 정확하게 짚어 분리시켜야 한다. 과거 역사 인식에서 한국 못지않게 일본에 대해 비판적인 감정을 드러내곤 하는 중국이 일관되게 비판하는 표적은 일본의 일부 극우 정치인과 단체다. 민족 대 민족의 감정적 충돌을 제어하는 외교의 전략적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로 우리는 걸어 들어가고 있다.

김한권·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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