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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 애리조나 반이민법의 뿌리

이길주/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5월이 시작됐다. 시인 T. S. 엘리엇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미국역사에 있어서는 5월이 큰 아픔들을 잉태시켰다.

1830년 5월. 미 연방의회는 동남부의 미 원주민을 서부로 내쫓는 ‘인디언 강제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통과시켰다.

이후 10년 동안 수만의 원주민은 삶의 터전을 떠나 ‘눈물의 여정(Trail of Tears)’을 떠나야 했다. 특히 체로키 인디언들의 여정에 가장 많은 피가 흘렀다. 1838년 1만6명의 체로키들이 116일을 걸어 서부로 가는 도중 4000명이 병과 배고픔으로 죽었다.

인디언의 강제이주로 2500만 에이커의 땅이 백인들에게 주어졌다. 한국의 영토와 같은 크기이다. 원주민들이 떠난 땅은 목화밭 등으로 변해 미국의 국부(國富) 형성에 크게 공헌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만행의 법적 당위성은 1823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기초한다. 대법원은 미 원주민들이 미국 땅의 ‘사용자(Occupant)’일뿐 땅에 대해 소유권(Title)’은 갖지 않는다는 법 해석을 내렸다. 속되게 표현해서 방을 빼라면 아무 소리 없이 짐을 꾸려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백인들의 시각에서는 그러나 ‘법대로’ 한 것이었다. 백인들이 북미 전체를 지배해야 하는 운명을 부여 받았다는 신앙에 가까운 역사관 ‘Manifest Destiny’을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었다.

미 원주민 강제이주 후 7년이 흐른 1846년의 5월,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시작한다. 국경분쟁으로 무력충돌이 발생하자 미국은 멕시코에 선전포고를 했다.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밀고 들어갔다.

2년 후 멕시코는 패배를 인정하면서 미국에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모두 190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을 약 2000만 달러를 받고 넘겼다. 한국의 19배에 달하는 땅이다. 이 곳에 살고 있던 멕시코인들은 땅을 포기하고 멕시코로 돌아가거나, 농장 노동자로 남아 차별 받는 하층민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영토의 반을 빼앗긴 멕시코는 그 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미국의 영향권 아래의 개발도상국으로 살아야 했다. 멕시코인들은 가난을 피해 미국을 향해 국경을 넘었다. 멕시코의 최고 생산품은 ‘불법체류자’라는 비애의 비아냥거림이 생겨난 이유다.

미국이 전쟁 후 멕시코로부터 떼어낸 땅 위에 세워진 주(州)중 하나가 애리조나이다. 이 애리조나가 지금 반 이민자 정서의 선봉에 서있다. 이 법은 이민자가 체류신분을 입증하는 다큐먼트를 소지하지 않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불법체류자로 의심할 근거가 있을 경우 경찰관은 의무적으로 체류신분을 확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민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되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또 불법 체류자의 주거 또는 취업을 돕는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애리조나는 이 같은 이민법을 집행하는데 있어 지역과 주 당국이 연방법의 제약을 받지 않도록 법 집행의 폭을 넓혀 놓았다.

애리조나 반 이민법은 과거 인디언 강제이주법과 멕시코 전쟁 이후의 멕시코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맥락을 같이 한다. 특정·소수·약자집단에게서 주인의식과 지위를 빼앗는 것이다. 그 방식은 ‘반갑지 않은 환경(Unwelcoming Environment)'을 조성하는 고전적 수법이다.

역사를 좀 더 들여다보자. 멕시코와의 전쟁 후 얻은 그 광활한 땅은 미국에 큰 시련을 안겨준다. 새로운 땅에 노예제도를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 미국은 둘로 갈라졌다. 1850년 결국 의회는 주민 투표로 결정한다는 절충안에 합의한다.

하지만 이 절충은 노예제도를 확대하려는 남부와, 이를 반대하는 북부 모두에게 노예제도는 전쟁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확인해주었을 따름이었다.

1861년 4월 12일, 결국 남북정쟁은 시작된다. 모두 60만이 전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4년 뒤인 1865년 4월 9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아브라함 링컨은 암살당한다. 역사에 관한 한 시인 엘리엇이 맞는지도 모른다. 미국사에서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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