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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상류집시, 하류집시

이영자/뉴저지 거주

루마니아엔 집시가 많다. 흔히 집시라 하면 떠도는 삶, 낭만적인 보헤미안을 연상한다. 어디에든 구속되려 하지 않고 음악과 춤을 즐기는 낭만적인 방랑, 열정을 가지고 자유의 시를 읊는 모습을 연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불결하고, 구걸하며, 거짓말을 잘하고, 각종 범죄를 일으키는, 호감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집시족은 오랫동안 소외와 핍박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역사가 기억해주지 않는 어두운 길에서 헤매고 있는 민족이다.

루마니아의 드넓은 농촌을 지나다 보면 포장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집시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마차가 그들의 보금자리다. 그들은 정부에서 아파트를 준다고 해도 자유로운 삶의 풍습에 젖어 거절하며 자기의 삶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다른 부류의 집시들, 즉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집시들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집시들의 집이니 올망졸망 모여 있는 움막집 같은 곳을 상상했으나 당도해보니 마을 입구부터 3층의 대저택을 방불케 하는 집들이 좌우로 늘어선 상류계층의 집시 동네였다. 그들만의 독특한 양식인지 지붕을 고깔을 씌우듯 뾰족뾰족하니 꽤나 모양을 내어서 지었다.

외부인들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가진 이들은 절대로 집을 외지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현지 안내인의 도움으로 집시회장 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집안에는 며느리인 젊은 부인과 11살, 8살의 두 딸과 가정부만 있었다.

안내인이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방문 허락을 받자 경계심을 보이던 며느리의 태도가 바뀌었다. 집시 전통 옷을 입은 며느리는 음료수와 다과까지 내오며 친절히 맞이했다. 그리고 “무엇을 알기를 원하느냐”면서, 묻기도 전에 집시에 대한 내력과 현황과 관습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집시에는 혼합족인 ‘찌간’이라 불리는 하류와 ‘롬’이라는 정통 집시가 있는데, 자기네는 전통을 중히 여기고 예의범절을 철저히 지키는 정통집시라며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 집시들은 대개 교육을 받지 않고 특히 여성이 교육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을 받은 며느리는 요즘 집시에 관한 영화를 위해 집필 중이라고 자기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스정교회 신자라는 그녀를 위해 우리 일행이 루마니아 집시 출신 목사님이 지은 ‘목마른 사슴’이란 복음성가를 부르자 감동하여 눈시울까지 붉어지며 함께 따라 불렀다.

마음이 열린 그녀는 오랜 친지를 대하듯 여자들만 이층으로 안내했다. 한 방에는 오색찬란한 긴 치마들이 백화점의 진열대처럼 빽빽이 걸려 있었다. 러플(ruffle)이나 구슬로 장식된 화려한 치마들은 세상의 모든 색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건너편 방에는 동대문시장 포목점을 연상하듯 삼면 벽에 온갖 색의 천들을 잔뜩 쌓아놓았다. 두 딸의 혼수 마련이라는데, 결혼예물로 한 번에 치마 200벌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틈틈이 만들어 모으고 있다고 한다.

결혼식 때는 돼지를 30마리쯤 잡아서 2∼3일 동안 마을 잔치를 성대히 치른다는 풍습도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었다. 14살에 시집와서 16년을 살았다는 그녀가 새삼 어른스러워 보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을 인륜지대사로 중히 여기는 풍습은 다르지 않은가 보다.

부모는 시간과 물질과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치르는 자녀의 혼사를 요즘의 젊은이들은 학교생활과 같이 합숙생활 정도로 여기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혼전에 살아보고 결혼을 한다는 젊은 세대들, 성격이 맞지 않아서 혹은 실직 당한 배우자와 살수 없어서 이혼하는 사람들로 이혼율은 물가고 만큼이나 높아가고 있다.

특히 경제성장과 비례하며 높아가는 한국의 이혼율을 보면서 아무리 쾌속으로 변하는 최첨단 시대일지라도 가정을 최대의 가치로 알고 소중히 지켜가며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처음 보는 손님을 친절히 대하며 융숭하게 대접하려고 예를 다하는 양반집시를 보니 지나가는 나그네도 선대하던 예전 우리 조상의 풍습이나 예절과도 흡사하다. 집시마을을 떠나는 마음이 마치 타임머신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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