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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미국 대륙기행] 알래스카 달튼 프리웨이 I I , 울퉁불퉁 400마일 야성의 자갈도로, 석유 찾아 뚫던 길 현대판 '골드러시'

아메리카 대륙의 최북단을 달리는 달튼 하이웨이는, 험난하기로 이름난 그 명성에 걸맞게 결국 나한테서도 댓가를 받아냈다. 돌아오는 길에 오른쪽 앞바퀴 림이 그만 찌그러지고 만 것이다.

달튼 하이웨이의 포장구간에서 흔히 발견되는 팟 홀들. 뾰족 뾰족한 자갈들과 함께 플랫 타이어를 만드는 주범중 하나다.

달튼 하이웨이의 포장구간에서 흔히 발견되는 팟 홀들. 뾰족 뾰족한 자갈들과 함께 플랫 타이어를 만드는 주범중 하나다.

도로 중간 중간 항아리 처럼 푹 파인, 이른바 팟 홀(Pot Hole)에 순간 바퀴가 걸리면서 림이 우그러진 것 같았다. 페어뱅스가 코 앞인 달튼 하이웨이의 최남단, 그러니까 이 길의 시점 부근이었다.

림이 심하게 우그러지면 타이어가 멀쩡해도 십중팔구 바람이 샐 수 밖에 없다. 운전대가 자꾸 오른쪽으로 꺽이길래, 차를 세웠더니 타이어의 바람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

왕복 800마일이 넘는 자갈 길의 달튼 하이웨이를 용케 큰 사고없이 탔구나 생각했는데, 막판에 당한 것이다. 차가 아주 드문 길임에도 불구하고, 왕복하며 플랫 타이어로 고생하는 사람을 셋 봤는데, 결국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지난 여름 승차 유랑인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6만 마일 안팎을 달린 것 같은데, 사고로 타이어를 갈아끼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타이어 갈아 끼우는데는 예전부터 일가견이 있어서, 10분여만에 가볍게 해치웠다.

갈아 끼운 타이어는 정규 규격이 아닌 비상용으로 지름이 정규 규격 타이어의 2/3 가량에 불과했다. 이런 비상용 타이어는 오래 달고 다니긴 곤란하다. 운전대 쏠림 현상이 나타날 뿐더러, 지름은 물론 폭도 좁아 제동력이 약해지는 등 여러모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차 출고 때 딸려나온 매뉴얼을 읽어보니, 속도도 50마일 이상을 넘지 않도록 권고 하고 있다.

달튼 하이웨이 같이 도로 표면이 울퉁불퉁한데다, 끝이 뾰죽 뾰죽한 자갈이 널려 있는 길은 타이어에 천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듯 이런 길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속도를 내기 어려운 만큼, 주행중 플랫 타이어가 돼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낮다.

이렇게 해서 플랫 타이어 1개, 앞 유리창에 작은 구멍 2개로 달튼 하이웨이를 막았으니, 이만하면 ‘선방’이라고 타이어를 갈아끼우면서 내심 생각했다.

팟홀에 림 우그러져

그러나 문제는 실상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페어뱅스로 들어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서 살펴 보니, 오른쪽 뒷바퀴 또한 바람이 현저히 빠져 있었다. 림은 멀쩡했다. 작은 구멍이 나 바람이 서서히 빠지고 있음이 거의 분명해 보였다.

주유소에서 일단 과할 정도로 타이어에 바람을 가득채웠다. 그리고선 타이어 2개가 그나마 도시 근처에 와서야 말썽을 부린 데 대해 안도하는 마음으로 타이어 수리점으로 향했다. 비상용 타이어가 하나 밖에 없는 처지인데, 달튼 하이웨이 한 중간에서 뒷바퀴 바람까지 빠졌다면 그야말로 아찔할 뻔했다.

달튼 하이웨이는 차량 정비소가 길게는 200마일 넘게 떨어져 있는데다, 대부분의 구간에서는 휴대전화가 불통이다. 또 통행 차량이 하루에 적게는 열 몇대쯤이나 될까말까 할 정도로 드문 날도 있어, 바퀴 2개가 동시에 플랫 타이어가 되면 손놓고 마냥 ‘구조’를 기다리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정비소를 찾아가니, 직원이 예상대로 오른쪽 뒷 타이어에 아이 손가락 보다 작은 날카로운 돌조각이 박혀 있다고 말한다. 한데 우그러진 오른쪽 앞 바퀴의 림은 펼수 없다며, 새 것 혹은 중고로 갈 것을 권했다.

이런 차로 어떻게 왔나

그러면서 어디를 다녀왔는데, 바퀴들이 이 모양이냐고 반문한다. 어깨를 약간 위로 으쓱하며 달튼 하이웨이라고 대답해주니까, 눈이 휘둥그레 진다. 이런 차로 준비도 없이 그 길을 탔느냐, 기가 막히다는 눈치다.

이런 친구들을 만나면, 으레 객기가 발동한다. 알래스카 태생이라는 20대 초반쯤인 이 젊은이에게 짐짓 그까짓 일이 뭐 대수냐고 대꾸해줬다. 그리고선 잠도 안자고 다녀오니 30시간도 안걸리더라고 혼잣말 처럼, 그러나 실은 들으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무튼 팔팔한 젊은이들을 기죽이고 싶은 충동은 참으로 억제하기 힘들다.

달튼 하이웨이는 알래스카 주 토지관리국 등의 권고대로라면 적어도 편도에 1박 2일, 왕복에 3박 4일 정도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어디 가만히 앉아서 찬찬히 뭘 뜯어 살피는 건 내 천성이 아닌 탓에, 달튼 하이웨이 또한 쉬지 않고 달렸다.

특히 달튼 하이웨이처럼 ‘야성’이 살아 넘치는, 멋진 길은 더욱 더 속도감 있게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넉넉하게 4박 5일, 혹은 5박 6일에 본다해도 겉핥기는 마찬가지일 뿐이다.

물론 속도감을 중시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일정을 하루, 이틀 줄이는데 있지 않다. 먼 여행길 옷깃을 스치듯 나눈 인연에 더 많은 여운이 있고 더 많은 얘기들이 자리잡듯이, 가벼운 만남이 불러오는 끝없는 상상을 즐기고 싶은 게 내가 속도를 내는 주된 이유다.

해머질 3번에 림 말짱

달튼 하이웨이는 앞으로 내 인생 내내 희미한 기억 속에서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길로 남을 게 분명하다. 이런 종류의 아스라함은 또 이 길에 대한 애착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다. 나는 세상만물을 이런 식으로 사랑한다. 어디 한 군데 오래 마음 주길 꺼려하니, 역마살이 불가피한 것이다.

하여튼 타이어의 구멍은 그럭 저럭 때웠지만, 찌그러진 림은 못고쳤다. 설상가상 금요일 늦은 오후여서 서너군데 정비소를 더 돌았지만, 기술자들 모두가 월요일에 보자는 식이다.

딱히 거처도 없이 차에서 잠을 해결하는 사람에게, 주말 이틀을 보내고 오라는 말은 야속하게 들렸다. 그렇다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비상용 타이어를 달고, 어디 멀리 뺄 수도 없는 형편이다.

페어뱅스에서 멀지 않은 디날리(Denali) 국립공원을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바퀴가 불완전한 탓에 페어뱅스에서부터 엉금엉금 기다 시피해서 3시간 가까이 걸려 디날리를 찾았다.

자동차 때문에 찜찜한 마음으로 주말 이틀에 걸쳐 디날리를 돌아보고, 월요일 새벽이 되자마자 다시 페어뱅스로 차를 몰고 나왔다. 헌데 중간에 들른 네나나(Nenana)라는 작은 마을에서 예상외로 간단하게 림 문제를 해결했다.

허름하게 생긴 길가의 한 자동차 정비소가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고 있길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들렀는데, 주인인 핼 채프먼이 1분도 안돼 림을 바로 잡아 준 것이다.

5척 단구의 핼은 뭔가 바쁜 와중에도 내가 사정을 얘기하자, 그 자리에서 림을 꺼내놓으라고 하더니 큰 해머를 들고 와서 정확히 3차례 찌그러진 부위를 가격했다. 림은 기계로 손을 본 것 마냥 깜쪽같이 거의 원상태로 복원됐다. 시골 사람 분위기가 역력한 핼은 기계로도 림을 똑바로 펼수 없다느니 하며, 월요일 날 보자던 페어뱅스의 도시내기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 것 저 것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 대뜸 해머를 들고 나오던 다부진 핼의 모습은 알래스카에 이주한 초창기 백인 선조들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19세기 말 엄혹한 알래스카의 자연 환경에도 불구하고, 금을 찾아 설산을 줄지어 넘던 사람들×××. 다부진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실천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달튼 하이웨이도 따지고 보면, 골드 러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20세기 중반 지금의 프루드호 베이 근처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오일 러시’가 일어나고, 기름을 캐기 위해 뚫린 길이 바로 달튼 하이웨이이기 때문이다.

154일만에 도로 완공

페어뱅스에서 푸르드호 베이 인근의 유전까지, ‘원형의 야생’이 지배하는 험난한 공간에 1974년 불과 154일만의 작업으로 달튼 하이웨이를 놓은 사람들은 현대판 골드 러시에 한몫을 한 주인공들임에 틀림 없다. 풀풀 날리는 먼지와 이리 저리 나뒹굴고, 튀는 자갈들은 당시 도로 공사에 투입된 인부들의 거친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빙하시대를 연상시키는 이 땅에서 길을 뚫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원의 공간을 점령해 나가는 정복자로서 쾌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원시의 대자연을 숭앙하는 자연주의자로서 행복감을 누렸을까.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달튼 하이웨이는 안락함, 편리함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여느 도로 보다는 대자연을 더 닮은 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평범한 이들마저도 이 길을 달리다 보면 그들 안에 잠자고 있던 야성이 깨어나, 어느새 가파른 숨을 내쉬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으리란 게 내 생각이다.

또 하나의 명물 '파이프 라인'
직경 48인치…알래스카 종단 '석유의 길'


알래스카 종단 석유 파이프라인(TAPS)은 달튼 하이웨이와 함께 시원의 땅을 가로 지르는 또하나의 ‘명물’이다. 이 송유관은 북극해의 푸르드호 베이에서 태평양을 향해 열린 남쪽의 항구, 밸디즈(Valdez)까지 장장 800마일을 달린다.

이중 절반인 북쪽 구간 400여마일의 송유관과 달튼 하이웨이는 마치 철길의 양궤인양 나란히 뻗어 있다. 지름 48인치의 이 초대형 송유관은, 달튼 하이웨이를 달리는 운전자들에게 한편으로는 흉물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자취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운전자들의 외로움을 덜어준다.

TAPS는 극한 기후를 보이는 알래스카 북부의 산과 강, 들판을 가로질러 놓여진 현대 엔지니어링의 신기원으로 통한다. 실제로 TAPS는 파이프라인 설치 공사상 최초로 적용된 몇몇 기후 관련 신기술로 유명하다.

북극해에서 막 퍼올려진 원유의 온도는 화씨 180도 안팎. 원유는 TAPS를 타고 오면서 대략 120도 정도를 유지하는데, 바깥 날씨는 여름철에도 빙점 이하인 경우가 많아 파이프 안팎의 온도차를 해결하는 기술이 필요했던 것.

송유관이 땅속에 묻혀있는 경우든, 지상에 노출된 경우든 이같은 온도차는 쉽게 화씨 100도를 넘어서는 날이 많아 당시 엔지니어링 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술력을 집중했다. 게다가 송유관이 통과하는 구간중 상당 부분의 지반이 연중 얼어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퍼머프로스트(Permafrost)로 토사가 온도 변화에 취약한 탓에 TAPS의 성패는 온도 관리에 달려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TAPS 엔지니어링 팀은 이 문제를 냉매와 열교환기 설치로 해결했다. 송유관을 떠받치고 있는 철구조물의 꼭대기에 열교환기를 달아, 이 교환기를 통해 열이 공기중으로 빠져나가도록 함으로써 철구조물의 지반이 녹아 가라지 않도록 하는 한편, 매설된 파이프 주변에는 찬 소금물을 계속 흘려 보내 역시 토사가 녹지 않도록 한 것이다.

800여 마일의 송유관로 중간 중간에는 11개의 펌핑 스테이션이 설치돼 원유를 남쪽으로 밀어내 준다. 1977년 여름 원유 수송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약 150억 배럴에 이르는 막대한 양의 원유가 TAPS를 통해 푸르드호 베이 인근의 유전에서 밸디즈 항구까지 수송됐다. 이는 총량으로 단순 비교를 하면, 미국에서 서너달 분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막대한 양이다.

TAPS는 지난 2002년 규모 8에 육박하는 대형 지진에도 끄덕이 없었을 만큼 튼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고의적인 손상시도에는 딱 부러진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2001년 술취한 한 남성이 송유관의 접합 부위에 총을 쏴대, 6000배럴에 이르는 많은 양의 원유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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