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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시청자가 심판이 되는 세상

나흘간의 시간, 그리고 72홀로는 부족했다. 연장전이 필요했다. 다시 18번 그린 위. 1.5미터짜리 짧은 퍼팅만 남았다. 들어가면 버디, 그걸로 끝이다. "손이 덜덜 떨렸어요. 머리 속도 복잡해졌구요. 수천 번이나 연습한 거리인데…. 잘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어요."

땡그랑.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챔피언은 퍼터를 떨궜다. 그리고 양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다. 무려 32개월만이었다. 얼마전 첫 메이저 대회(ANA인스피레이션)에서 우승한 유소연의 이야기다.

고통스럽게 긴 슬럼프의 끝이었다. 그걸 견디고 되찾은 영예였다. 하지만 갈채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맹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함께 연장전을 벌였던 렉시 톰슨(미국)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이었다.

필 미켈슨은 "우승 트로피는 톰슨에게 주어져야 한다"며 LPGA를 향해 불만을 터트렸다. 로리 매킬로이도 동조했다. "톰슨에게 주어진 벌타는 이해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며 강렬하게 반응했다.



발단은 외부의 제보였다. TV 중계방송으로 3라운드를 본 시청자가 이의를 제기했다. (퍼팅) 마크한 곳보다 공을 홀 컵 가깝게 놓고 쳤다는 지적이었다. LPGA는 다음날 경기위원회를 열어 벌타 부과를 결정했다. 오소(誤所ㆍ잘못된 장소) 플레이 2벌타에 스코어카드 오기(誤記) 2벌타를 합해 무려 4벌타를 부과했다.

시청자를 통해 제기된 이의가 받아들여진 최초의 사례였다. 메이저대회에서, 그것도 최종일 우승자가 바뀌는 상황이었기에 한동안 뜨거운 논쟁거리가 됐음은 물론이다.

이같은 논란은 며칠 뒤 열린 마스터스에서 다시 한번 불붙었다. 우승자 세르히오 가르시아의 플레이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다는 제보가 나왔다. 4라운드 13번 홀에서 볼 주변을 정리하던 와중이었다. 공이 살짝 흔들린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이 장면이 담긴 2초짜리 동영상은 SNS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룰 위반은 없었다"며 입장을 정리했다. 만약 이의가 받아들여졌으면 또 한번 우승자가 바뀌는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TV 화질은 눈부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 고화질은 너무 낡은 말이 됐다. UHD를 넘어서, QLED, 나노셀 같은 차원을 달리하는 용어들이 등장한다.

IT 산업의 발달은 세상 전체를 바꾸고 있다. 물론 스포츠라고 예외일 리 없다. 야구, 축구, 테니스 등 거의 모든 종목에서 규칙 개정이 이뤄졌다. 시청자의 눈높이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비디오 판독, 챌린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재심 청구' 제도가 그것이다. 그런 시대의 변화는 골프에도 불어닥쳤다. 톰슨이 첫 희생자가 된 셈이다.

비단 하드웨어적인 변화만이 아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도 결정적이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시킨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같은 것들을 통해서다. 그러니까 모두가 기자가 되고, 모두가 심판이 되는 세상인 셈이다.

톰슨과 가르시아의 경우도 처음에는 트위터 상에서 불이 붙었다. 논란이 확산되고, 결국 대회를 운영하는 주최측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으로 발전됐다.

대부분 골프 선수들은 불만이다. 시청자가 경기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들이다. 혼란에 대한 위험성 때문이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보호막이 언제까지 유효할 지는 아무도 보장하지 못한다.

팬(시청자)은 소비자다. 산업을 유지시키는 핵심 요소다.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마냥 전통과 독립성을 주장하는 건 일방적인 불통일 뿐이다.


백종인 /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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