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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필 미켈슨의 포기

US오픈은 올해까지 117번이 열렸다. 그 중 1999년 대회는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챔피언 조는 29살의 필 미켈슨과 42세의 페인 스튜어트였다.

15번 홀에서 미켈슨이 1위로 올라섰다. 3홀만 방어하면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16번과 17번 홀에서 동점과 재역전이 거듭됐다.

마지막 18번 홀. 미켈슨의 버디 퍼트가 살짝 빗나갔다. 반면에 스튜어트의 18피트짜리(5.5m)는 거짓말처럼 홀 컵에 떨어졌다(이 거리는 US오픈 사상 가장 긴 우승 퍼트였다). 챔피언은 한쪽 다리를 번쩍 들고 환희에 찬 세리머니를 펼쳤다. 물론 파트너에 대한 위로도 잊지 않았다. 패자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29세 젊은 골퍼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팬들은 어쩌면 연장을 기대했을 지 모른다. 아시다시피 US오픈은 월요일 18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연장전을 치른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다. 미켈슨은 이날 비퍼(호출기)를 주머니에 넣고 라운딩했다. 첫 딸 출산 예정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내가 진통을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곧바로 게임을 포기하고 병원으로 날아갈 작정이었다. 옆에 있던 스튜어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위로하며 속삭인 말도 그것이었다. "덕분에 멋진 경기였네. 자넨 이제 아빠가 될 걸세(I'm so happy for you. You're going to be a father!)."

필 미켈슨과 US오픈은 이후로도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4년 전 일도 그렇다. 개막 전날 그는 연습 라운드를 취소하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개인 비행기를 이용해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까지 날아갔다. 대회 장소였던 펜실베이니아 아드모어에서 2400마일이나 떨어진 곳이다. 첫째딸 어맨다의 졸업식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온 것은 이튿날 새벽 4시 반이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 7시 11분 1라운드 티오프 시간을 맞췄다. 놀라운 것은 그러고도 공동 2위까지 올랐다는 사실이다. 그 전 해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는 둘째딸 소피아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겹쳤다. 마찬가지로 새벽에 돌아와 대회를 치르는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빠들은 다 그렇게 한다. 당연한 것 아니냐." 대수롭지도 않았다.

2009년도에는 한동안 투어를 포기했다. 아내 에이미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탓이다. 수술한 아내 곁을 지키다가 거의 두 달만에 복귀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그냥 혼자 외롭게 차를 타고 있는 것 같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기자회견 도중 간간이 목이 메어 말이 끊어졌다. 때때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PGA 통산 51승이나 올렸다. 그런데도 그는 2인자에 지나지 않는다. 타이거 우즈(106승)라는 거대한 산이 나타난 뒤로는 늘 그랬다.

무엇보다 메이저 대회에서 격차가 엄청나다. 우즈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3번 달성할 정도인 14번이나 우승한 것에 비해 미켈슨은 5번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US오픈에서는 준우승만 6번에 그쳤다.

올해 대회는 하필 첫째 딸 어맨다의 고교 졸업식과 또다시 겹쳤다. 그의 결정은 너무도 당연히 '가족'이었다. 덕분에 117번째 대회는 타이거 우즈도, 필 미켈슨도 없는 이벤트가 됐다. 1994년 이후로 처음이다.

어쩌면 US오픈은 앞으로도 그의 우승을 허락하지 않을 지 모른다. 그래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숙제로 남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오히려 더 미켈슨 같은 '커리어'라는.


백종인 /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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