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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우에하라의 도전

34살 때였다. 투수로는 이미 내리막을 탈 나이다. 일본인 투수 우에하라 고지가 미국행을 선언했다. 주위에서는 한사코 말렸다. '그 나이에 무슨 험한 꼴 보려고 그러냐.' 걱정들이 한가득이었다. 메이저리그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그나마 동양권에 관심이 많은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2년짜리 계약서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선발을 원했다. 하지만 체력도, 구위도 못 미쳤다. 불펜(중간 투수)으로 밀렸다. 거기서는 그나마 조금 괜찮았다. 잠깐이지만 마무리도 맡았다. 가치가 올라가자 구단은 트레이드 매물로 활용했다. 텍사스 레인저스로 팔려갔다.

그곳에서도 2년을 버텼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내구성이 문제였다. 잦은 부상으로 활용도가 떨어졌다. 2년째는 DL(부상자 명단)을 들락거렸다. 겨우 36이닝 밖에 던지지 못했다. GM(단장) 존 다니엘스는 연장 계약에 관심이 없었다. 코넬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수재가 40을 눈 앞에 둔 투수에게 팀의 미래를 투자할 리 없었다.

다른 팀을 찾아야 했다. 춥고, 거칠고, 드센 보스턴이었다. 기자들이 물었다. 왜 하필 거기냐고. "프로가 된 이후로는 딱 한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늘 이긴다는 마음이다. 그것도 가장 강한 곳에서, 가장 강한 상대라면 더 좋다. 만약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면, 그 때는 정말로 야구를 그만둘 때다."



처음 맡은 일은 조연에 불과했다. 6회나 7회 쯤에 1이닝 정도 막아주면 '땡큐'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평가가 높아졌다. 결국 마무리의 중책까지 맡게 됐다.

가을이 되자 위력이 더해졌다.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4승 중 3번의 승리를 지켰다. MVP에 선정됐다. 다음 단계 월드시리즈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마지막 승리를 세이브하며 레드삭스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우승이 결정된 순간 장내 아나운서가 소감을 얘기하라며 마이크를 넘겼다. "(긴장과 감격에) 지금 막 토할 것 같아요." 펜웨이 파크가 떠나갈 것 같은 함성과 웃음이 터졌다. 모든 것이 끝난 뒤 숙소로 돌아왔다. 허탈한 표정으로 나즈막히 읊조린 한마디가 있었다. "유메(夢)"였다. 꿈을 이뤘다는 뜻이리라.

큰 덩치도 아니다. 185㎝, 86㎏에 불과하다. 190㎝, 100㎏이 넘는 투수들이 즐비한 곳에서는 허약한 축이다. 강한 공도 아니다. 기껏해야 90마일이다. 그런 패스트볼로 송곳 같이 좌우를 찌르며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다. 잡초같은 인생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별 볼 일 없는 학교의, 이름 없는 후보 외야수였다. 데려가는 대학이 있을 리 없다. 1년간 재수는 어쩔 수 없었다. 잡일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간신히 입학 허가를 받았다. 오사카 체육대학이라는 곳이었다. 물론 야구 명문이라는 이름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투수로 전향하면서 일취월장했다. 동호인 수준이던 2부 리그 팀을 단번에 정상권으로 끌어올렸다. 대학 4년간 36승 4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올렸다. 일본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곳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다. 급기야 당시 아마추어 최강이던 쿠바전에 선발 등판해 승리투수가 됐다.

42살인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시카고 컵스). 이리 저리 밀리며 여러 팀을 전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 계약 조건이 하나 있다. '등번호는 반드시 19번일 것'이다.

재수하던 시절 안 해본 게 없다. 편의점, 식당 같은 곳에서 온갖 허드렛 일을 도맡았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 곳은 공사판이었다.

19살 때였다.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19번을 고집하는 이유다.


백종인 /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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