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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호치민의 '불교적' 혁명 구호

"Nothing is more precious than independence and freedom."(독립과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베트남의 독립운동과 통일전쟁을 이끈 호찌민 (胡志明·호지명)이 내세운 구호. 그의 꿈대로 이차대전 후 베트남은 독립을 한다. 비록 분단 상태이지만. 1969년 9월 호는 세상을 떠난다.

비엣 탄 구웬(Viet Thanh Nguyen)은 1971년 공산 베트남에서 태어난다. 네 살 때 난민으로 미국에 온다. 2016년 그는 첫 소설 '동조자(The Sympathizer)'를 출판한다. 그리고 퓰리처상을 탄다. 미국 최고의 문학상이다.

'동조자'의 주인공은 공산주의자. 그는 사이공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공산당 세포 조직에 가담한다. 같은 또래의 세 친구가 공산 월맹에 충성 혈맹을 한다. 호찌민이 내세운 구호가 평생의 신조가 된다.



그는 프랑스 신부가 13살의 베트남 여인을 겁탈해서 낳은 아이. 베트남에서도 베트남 사람 대접을 못 받는 혼혈아. 미국 중앙정보부 요원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까지 한다. 미국의 첩자가 되어 베트남에 돌아간다. 친미 사이공 정부의 경찰 총수, 군장성의 부관으로 최고급 정보를 다룬다. 그는 이중 간첩. 베트남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그가 얻은 정보를 월맹 공산당에 전한다.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미 중앙정보부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온다. 그의 상사 장군과 함께 남가주에 자리잡는다. 장군은 현지 베트남 사회의 지도자가 되고 동조자는 그의 수하가 된다. 장군의 명령으로 공산화된 베트남에 우호적인 언론인을 죽이기도 한다. 계속 베트남 공산 정권에 동향 보고를 한다.

장군이 베트남 해방 특공대를 조직한다. 동조자는 그 일원으로 베트남에 잠입한다. 잡혀서 공산 베트남의 정치범 교화소에 수용된다. 어릴 때부터 월맹에 충성한 공산주의자라는 사실도 그에게 자유를 주지 못한다. 2년 동안 반성록을 쓰고 또 쓴다. 계속 반송된다. 그의 인생 이야기를 곱씹어 다 까발려도 만족한 반성문을 쓸 수 없다.

마지막에는 고문. 잠을 재우지 않는다. 고문을 하던 교화소 정치국원이 끈질기게 묻는 질문. What is more precious than independence and freedom?(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지?) 대답하지 못한다. 그저 잠을 자고 싶을 따름. 고문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동조자가 같이 공산주의에 충성 맹세를 했던 친구이다. 동조자가 그 동안 보냈던 비밀 정보들은 그 친구를 통하여 월맹의 지도부에 전달되었다. 동조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수용소의 정치국원으로 자원해 온 것이다.

깨달음에 다 와서 딱 한 마디를 깨우치지 못하는 제자를 바라보는 선승의 안타까움. 그런 마음으로 고문자는 다그친다.

"죽고 싶지. 죽음이라는 게 한 순간 고통일 뿐. 산다는 게 더 많이 아프고, 더 오래 아프지." 고문자는 이미 깨달은 것이다. 조국이 공산 통일을 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고문자는 이미 자신을 내려놓았다. 사이공이 해방되던 날 마지막 전투에서 네이팜 탄을 맞고 얼굴이 다 타버린다. 그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얼굴이 없어진 것이다. 상이 없어진 그는 깨닫는다.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던 독립과 자유는 구호, 망상 속의 해방이었을 뿐. 세간은 여전히 고(苦). 그는 부패한 민중의 상전.

동조자도 깨닫는다. "Nothing(無, 무)"이라는 것이 독립(independence)이니, 자유(freedom)니 하는 관념들보다 더 소중하다(more precious)는 것을. 호찌민의 구호는 미혹의 옷. 뒤집어 보니 엉성하게 꿰매어 얽어 놓은 헛것. 다 풀어 없어지는 일시적 모음. 남는 건 텅 빔, 공(空). 동조자는 원래 얼굴이 없다. 이중 간첩, 두 얼굴, 그 어느 얼굴도 자신의 얼굴이라고 고집하지 않았다. 자신을 내려 놓으니 헛구호의 안쪽이 보인다.

구호와 관념을 무너뜨려라. 그러면 nothing, 무(無), 공(空)이 보인다. 모든 것에 자성이 없다, 諸法無我(제법무아).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이를 깨닫고 받아들이고 세상을 살자. 그것이 큰 자유이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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