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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이름 붙이다, 허상에 매달리다

줄리엣은 금강경을 읽고, 부처님은 썸을 탄다.

"이름 속에 뭐가 들어 있다는 말인가? 장미는 뭐라고 부르든 달콤한 향기가 나지."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By any other word would smell as sweet.)

셰익스피어의 아린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줄리엣의 독백. 연극 2막 2장, 줄리엣이 2층 침실 발코니에 서 있다. 그날 연회장에서 처음 만나 키스까지 나눈 로미오를 생각한다. "왜 그대의 이름이 로미오란 말인가?" 하필이면 원수 집안의 아들 로미오를 사랑하게된 신세 한탄이다. 그러나 곧 깨닫는다. 그 사람은 '이름하여' 로미오일 따름, 이름이 실체는 아니다.



'이름하여 (是名)' 이 말이 금강경에 27번 나온다. 대우주로부터 먼지까지, 부처님으로부터 중생까지, 최고의 가르침으로부터, 범부의 마음까지, 모두 이름이 그러할 뿐. 이름이 만들어내는 고정관념, 즉 상에 매달리지 말라는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 타이틀 또한 관념이다. 대부분 이 희곡을 청순한 첫사랑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아니다. 로미오의 첫사랑은 로살린이다. 연극 1막 1장은 로살린 때문에 상사병이 걸린 로미오의 방황으로 시작한다. 로미오가 원수 집안 줄리엣 집에 간 것도 로살린이 그 집 파티에 초대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줄리엣을 보고 한눈에 훅 가서 로살린은 까맣게 잊는다.

로미오가 줄리엣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당신은 성자, 나는 참배객. 참배객이 성자의 손을 잡는 것 당연하지요. 손으로 부족하면 입술도 있어요." 줄리엣이 답한다.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 되죠. 입술로는 기도를 하는 거죠. 기도를 하시겠다면 성자는 가만히 있지요." 로미오가 첫키스를 한다. 그리고 말한다. "제 죄가 당신 입술에 묻었으니, 다시 한번 키스를 해서 당신 입술을 씻어 내지요." 다시 한번 키스한다. 이 정도면 청순과는 거리가 먼 연애 도사들.

부처님. 이 또한 이름이다. 이름에 따라오는 상은 거룩, 근엄, 자비…. 부처님과 남녀 간의 사랑은 거리가 멀다는 생각, 그 또한 상일 따름이다.

부처님도 요즈음 말로 썸을 탄 적이 있다. 전생에 수메다라는 이름으로 사신 적이 있다. 잘 생긴 청년 수메다가 어느 마을을 지난다.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 당시의 부처님 디팡카라 부처님(연등불)이 오신다는 것이다. 수메다도 꽃 공양을 하고 싶다. 그러나 동네의 꽃은 이미 다 팔렸다. 그때 고삐라는 처녀가 꽃 일곱 송이를 가지고 나타난다. 수메다는 꽃을 팔라고 한다.

처녀는 파는 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수메다의 맑고, 깊고, 고요한 눈을 보고 말한다. "내생에 저의 신랑이 되어 주신다면 꽃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수메다가 대답한다. "다음 생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부부의 연을 맺읍시다." 부처님은 전생에 대단한 연애 달인. 물론 수메다는 꽃을 얻어 연등 부처님께 공양을 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싯달다로 태어나셨을 때 야소다라와 결혼한다. 야소다라의 전생은 고삐 처녀.

고정관념, 상을 깨버리면 이렇게 자유로워 진다. 줄리엣에게서 금강경을 배우고, 부처님으로부터 연애의 기술을 배운다.

무릇 있는 바 상이 있는 모든 것은(凡所有相) 모두 허망하다(皆是虛忘) 만약 모든 상을 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若見諸相非相) 즉시 여래를 보는 것이다(卽見如來).

금강경에 나오는 네 줄로 된 게송, 사구게(四句偈)다. 금강경은 한국 불교 조계종에서 가장 떠받드는 경전이다. 서기 402년 구마라지바가 산스크리스트어 원본을 한자로 번역한 역본이 가장 많이 읽힌다. 해인사 대장경 기준으로 5129자. 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반복된다.

우리는 이름을 붙여 놓고, 그 이름이 지어내는 허망한 상에 매달린다. 금강경은 존재한다고 하는 모든 것들이 "꿈 같고, 꼭두각시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완전한 지혜요, 반야(般若, prajna)이다. 반야의 경지에 이르면 줄리엣도 부처님이고 부처님도 로미오가 된다.


김지영 / 수필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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