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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우주 보살'을 기다리며

김지영 / 인문학 강사·변호사
김지영 / 인문학 강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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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8/03/16 미주판 23면 기사입력 2018/03/15 20:54

지구인이 화성인을 만난다. 2033년 8월 어느 날 밤. 화성의 어느 이름 없는 바위 산. 화성인이 지긋한 눈길로 지구인을 본다. 지구인이 말을 건다. 화성인이 못 알아듣는다. 화성인이 손을 들어 지구인의 머리를 만진다. 그리고 둘은 영어로 대화한다.

둘이 어색한 악수를 한다. 손과 손이 서로를 관통한다. 맞닿은 느낌도 없이 안개를 스쳐가듯. 지구인은 자신의 따듯한 가슴을 쓸어보고 안심한다. "나는 진짜야 (I am real)." 화성인은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고 안심한다. "내가 진짜고, 저놈은 허깨비 (phantom)."

"너의 종족은 다 죽었는데 너만 어떻게 살았니?" 지구인이 묻는다. "웃기는 소리. 우리가 왜 죽어. 모두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데. 난 지금 저 운하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가고 있어. 저기 도시가 안 보이니? 우리 동네야." 화성인이 대답한다.

지구인이 말한다. "저 도시, 이제 폐허야. 기둥은 부러지고, 거리에는 먼지뿐. 운하는 말라버리고." "네 눈이 멀었군. 운하에는 포도주가 넘쳐 흐르고, 여인의 가는 허리 같은 배, 그 배 위에 어여쁜 여인네들이 있지. 난 지금 그리로 가는 길이야. 가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사랑도 하고." 화성인이 말한다.

지구인과 화성인의 논쟁은 끝이 없다. 둘은 같은 자리에서 전혀 다른 두 개의 세상을 본다.

레이 브래드베리(Ray Bradbury, 1922-2012)의 소설 '화성 연대기(The Martian Chronicles)'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는 공상과학 소설가로는 드물게 폭 넓은 독자층을 가진 미국 작가다. 그의 1953년 소설 '화씨 451도(Fahrenheit 451)'는 미국 고등학교 과정의 필독 도서이다.

우리는 우리가 현상을 인식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우선 나, 인식의 주체가 있다. 그리고 인식의 대상이 있다. 그 대상에서 입자 형태의 신호가 나와 나의 눈, 귀, 코, 혀, 몸에 전해지면 나의 의식이 그 대상을 파악한다.

인식 주체인 나와 의식 대상인 온 세상은 당연히 따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내가 있고, 네가 있고, 그것들이 있는 이 세상, 그 속에서 나를 지키고, 나의 것을 챙겨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네 삶이 고단하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이 "나, 나의 것, 나의 편"을 추구하다보면 충돌이 일어나고, 그것이 세상의 고통의 원인이다.

불교에서 보면 이런 충돌은 제대로 알지 못해(無明·무명) 일어나는 번뇌이다. 제대로 알고 보면 내가 본다고 생각하는 현상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일 따름이다. 모든 것은 마음의 조화일 뿐(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우리의 심층의식, 아뢰야식이다.

아뢰야(alaya)는 산스크리스트어로 "저장고"라는 뜻. 히말라야 (Himalaya)는 눈(hima)의 저장소라는 의미이다.

지구인이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폐허화 된 화성 마을은 그의 마음이 만들어 낸 현상이다. 그 자신도 그 풍경의 일부이다. 다만 그는 그 그림 바깥에서 대상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화성인도 마찬 가지다. 마음이 만들어 낸 살아있는 화성을 보고있다고 생각한다. 아뢰야식의 조화이다.

그 심층 의식 속에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의 전생과 이생의 삶을 담은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이 일정한 조건이 맞으면 싹이 터서 내 삶이 현상으로 전개된다. 나도, 너도, 그 것들도 그 현상 속에 하나의 부분일 따름이다. 나와 너와 그것들 간에 구별이 없다. 그것을 깨달으면 나를 지켜야 하고, 나의 것을 챙겨야 하는 고뇌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아뢰야식은 모든 사람이 공유한다. 서로가 서로의 종자를 품는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현상 세계를 경험한다. 이런 인류 공생의 원형을 찾아가는 것이 도를 구하는 일이다.

도를 깨달으면 모두 한 마음 (一心·일심)이 되고 한 몸으로 느낀다 (同體大悲·동체대비). 이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살이다.

소설 속의 화성인과 지구인은 아직 무명과 아집 속의 존재. 그래서 그들의 '나의' 세계를 고집한다. 화성과 지구를 아우르는 우주 보살들이 나타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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