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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

장병희 / 사회부 부국장
장병희 / 사회부 부국장  

[LA중앙일보] 발행 2018/09/07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09/06 20:19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설립한 토머스 정(한국명 정용봉) 회장을 최근에 인터뷰했다. 그는 한국전 당시 육군 소위로 참전하고 제대 후 미국에 와서 사업을 크게 성공시킨 기업인이다.

그가 쉬워 보이지 않는 국군포로 송환을 요구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게 된 동기는 다름아닌 조창호 소위 때문이다. 조 소위는 한국전 당시 포로로 잡혀서 탄광 등지에서 평생동안 노동만 하다가 1994년 탈북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조창호 소위 이후로도 총 80명이 탈북해 귀환했다.

정 회장은 만약 그런 상황에서 조창호 소위가 아니고 정용봉 소위였다면 어땠을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정 회장은 운이 좋아 미국까지 와서 사업을 했지만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면 평생을 북한 탄광에서 석탄이나 캤을 것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자신은 조 소위가 오기 전까지 모든 국군포로가 제대로 귀환했으며 심지어 남아 있는 국군포로가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 제대한 지 한참 지났어도 아침에 일어난 자리가 군대에서 썼던 침상인지 확인해본다는 얘기다. 개인차가 크겠지만 일부에게 있어서 군대 기억은 트라우마 수준이다. 정 회장에게는 조 소위의 경험이 결코 남의 경험으로만 끝나지 않았던 것같다. 조창호 소위는 2006년 사망했다. 평생 탄광에서 석탄을 캐다가 상한 폐질환 후유증이었다. 그를 이어 탈북했던 국군포로 생존자는 이제 20명도 안된다. 다시 말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 출신 노인들을 바로 송환하지 못하더라도 생사확인이나 서신 왕래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국제법에 저촉되는 국군포로의 존재를 굳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남한도 가뜩이나 까다롭게 구는 북한 당국자들과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토머스 정 회장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간 군인을 저렇게 방치한다면, 나중에 누가 전쟁터에 나가겠느냐고 되묻는다.

논란은 크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유해 송환을 싱가포르 협정문 안에 굳이 넣었다. 그리고 50여 구의 유해를 북한으로부터 돌려받았다. 이런 장면을 보는 미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누구든 군에 입대하면서 혹시라도 죽게되면 가족에게 자신의 생사는 물론, 유해라도 전해질 터이니 국가를 믿고 전쟁터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어쩌면 역사상 최고의 일본 총리가 될지도 모를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회담 전제조건으로 납치된 일본인들의 송환을 내걸고 있다. 사실 북일회담은 90년대 중반에 열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북한이 유해라고 일본에 송환한 사체가 동물의 것으로 밝혀져 회담이 결렬됐다. 일본 총리는 최소한 자국 국민이 납치된 것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사죄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아는 것이다.

국가는 주권, 영토, 국민을 지켜야 한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도 국민을 지키는 것보다는 남북정상회담 같은 큰 것 '한 방'에 더 큰 기대를 거는 것 같다. 주권이란 정 회장 말대로 국민이 국가를 믿고 영토를 지키러 전장에 나갈 때 지켜지는 것이다.

만약 조창호 소위가 탈북해 돌아오지 않았다면 생존 국군 포로의 실태는 여전히 묻혀있었을 것이고 국군포로송환위원회 같은 단체도 아예 없었을 지 모른다. 우리는 커밍아웃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타계할 때마다 생존한 할머니의 숫자를 세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 생존한 포로는 350~500명이라는 추산만 할뿐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키려 노력했던 사람들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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