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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진상'인가, 1등 고객인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좀처럼 상담원과 연결이 쉽지 않다. 한참이 지나도 음악소리만 나온다. 30분은 족히 지난 듯하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걸었을 때는 웬일인지, 곧바로 통화가 된다.

운이 좋아서일까? '3억3000만분의 1'이었다는 16억 달러 메가밀리언 당첨자도 나왔는데, 그까짓 고객센터에 연결되는 운쯤이라니.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스트레스 받을 일 없다.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접하고 열을 받기 시작하면 건강에 도움이 안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고객센터에서 누구 전화는 즉각 받고 다른 누군가는 30분 이상 기다리게 하는 게 우연이 아니라면 어떤가. 그런 선택에 '기업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위의 예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소개한 내용이다. 그리고 고객센터의 응대 차이에는 나름대로 '고객평가(customer lifetime value)'가 작용한다는 게 저널 측 설명이다.

크레딧카드사가 새로운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 고객의 신용점수를 확인한다거나 은행이나 자동차 딜러가 모기지나 오토론을 내줄 때도 신용점수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적립이 많은 고객에 좌석 업그레이드 기회를 우선 부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단순히 제품에 대한 문의나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전화에도 이런 식의 차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도대체 일면식도 없이 무작위로 거는 전화를 상담원이 어떻게 식별해서 차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분통터질 일이다. 더 이상 점수 때문에 고민해야 할 학생도 아니고, 월급받는 직장에서 업무평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고객센터 상담원은 어떻게 당신을 30분이나 전화통을 붙들고 있게 한 것일까. 방법은 많다. 그게 통신사였다면 휴대폰 번호만으로도 신분확인이 가능하다. 상담원의 책상에 놓인 컴퓨터에는 이미 고객에 대한 분류가 선명하다. '전화요금 연체가 많고, 서비스 불만 내용이 대부분이고, 무엇보다 통화 태도가 불량하다'는 깃발이 뜬다면 고객점수가 형편없다는 표시다. 하지만 동시에 전화를 건 다른 누군가는 우량고객이다. 고객 프로필에 나타난 지역정보를 보니 베벌리힐스에 산다. 상담원은 이미 교육을 받았다. 누구 전화에 먼저 응해야 하는지.

통신사, 항공사, 카드사, 은행들만이 아니다. 월마트나 타겟, 코스트코, 메이시스 등 많은 소매업체들이 다양한 경로로 입수한 고객정보를 빅테이터로 만들고 분석해 '고객평점'을 매긴다. 제타글로벌이라는 데이터컨설팅업체가 축적한 이런 정보는 무려 7억 명분이며, 개인에 대한 정보도 2500개씩이나 된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고객평점이 상담부터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전방위적으로 활용된다. 옷을 자주 사지만 반품 많은 고객은 평점이 좋을 리 없다. 가끔 타는 비행기 고객이 툭하면 불만접수를 한다면 아마도 '진상'이란 낙인이 찍혀 있을 것이다. 고객평점을 산정하는 방법은 기업의 활용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할 수 있다.

20년 전만 해도 교육이나 재산 정도가 고객 분류의 기준이 됐다면 이제는 기업의 활용 방향에 따라 디테일한 정보 취합이 가능하다. 휴대폰, 카드, SNS, 전자상거래 등은 사람들의 반복된 취향을 데이터화 하기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도구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싸구려' '사기꾼' '1등 고객(시민)' 등으로 분류된다. 나도 모르게 받아쥐게 된 '성적표'. 그런데, 참 묘하다. 일상이 시험장이 돼 부담스런 현실 속에서 지금 나는 내 점수가 더 궁금해 진다.


김문호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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