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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떠난 자의 몸과 마음

김지영 / 변호사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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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9/02/13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9/02/12 20:20

설날 첫 새벽, 짐을 싼다. 또 떠나야 한다.

마곡사로 차를 몬다. 새벽 다섯 시, 마주 오는 차도 같이 가는 차도 없다. 공주 금강 가에 있는 엄마 아파트에서 마곡사까지는 약 10킬로, 그 길의 반은 아직도 옛길이다. 50년 전 털털거리는 만원 버스에서 재잘거리던 그 여학생들 모습이 떠오른다.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 짧은 순간이지만 어둠 속의 사천왕의 모습에 섬찟하다. 극락교 아래 개울이 꽁꽁 얼었다. 대적광전, 동쪽 쪽문을 연다.

비로자나불을 마주한다. 33배를 하고 앉아서 명상을 한다. 한기가 배 속으로 올라온다. 그래도 지긋이 내려 보시는 부처님 눈빛은 따듯하다.

바깥이 훤하다. 법당을 나와 명가울-지름재-소랭이골을 지나 광정으로 나오는 산골길로 달린다. 지름재, 엄마 고향이다. 소랭이, 할아버지께서 열한 살까지 사셨다는 동네. 친가와 외가 조상님들께서 넘나드셨던 고갯길, 두렁길, 산길을 달린다.

옛 조선국도 1번을 만나는 곳, 광정. 1800년대 말에도 기생집이 있었을 만큼 큰 동네다. 증조할아버님께서 그 집 일등 고객이셨다고. 고조 그 윗분 현조, 두 분께서 모두 급제를 하신 분들이시라 증조부께서 스트레스가 많으셨을 터이다. 한 잔 술이 한 말 술이 되고, 문전옥답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그래도 지금 조상님들을 뵙는다면 증조부님께서 나와 코드가 가장 잘 맞을 듯.

삼바실에서 차례를 지낸다. 어느덧 내가 제사를 지내는 사람 중에 가장 연장자다. 그리고 달월고개 산자락에 있는 조상 묘에 성묘. 윗대 현조, 고조, 비석은 거창하다. '통훈대부(通訓大夫)' '통덕랑(通德郞)'- 정3품과 정5품의 문관 벼슬이라고. 증조부, 조부 두 분은 '학생(學生).' 나도 여기에 묻히면 '학생'일 터.

엄마에게 하직 인사를 한다. 요양원에 계시다가 설을 쇠러 외출 나오신 노모. 내가 이제 미국으로 간다고 하니, "그 먼디를 왜 가니?" 하고 물으신다. 아들 하나 있는 게, 미국으로 간 지가 거의 40년 전인데 그 기억이 가물거리신다. 고향 집을 떠나 6시간 반, 오후 다섯 시에 공항 도착,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나: "이제 벵기 타유." 엄마: "워디 가는디?"

한국에서 오후 7시 40분 떠난 비행기가 같은 날 오후 2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다. 시공(time-space)의 꽈배기에서 지렁이 구멍(wormhole)을 통해 과거로 여행을 한 듯. LA공항 입국심사 받는 줄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영주권자도 시민권자와 같은 줄에서 심사를 받았는데 이제는 외국인 줄로 가란다.

오후 4시 사무실 도착, 이렇게 단 3일 동안의 귀향은 끝난다. 설날 떠나서 설날 도착. 오늘 하루 41시간, 그렇게 지나간다. 한국으로 가는 것이 귀국인지,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귀국인지, 헷갈린다.

'떠나다'에 해당하는 영어 'leave'는 '남겨놓는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마음만은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왔지요).' 떠난 자는 몸과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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