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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네켄 농장에 울려퍼진 '대한독립'

114년 전 멕시코 이민 1세대
후손들 3·1절 100주년 행사
5년만에 200여명 모여 기념
"독립정신은 우리의 정체성"

올해 티후아나 한인회장으로 선출된 퍼민 김 회장.(왼쪽)  1942년 멕시코 메리다 한인국민회 회원들이 태극기와 멕시코 국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올해 티후아나 한인회장으로 선출된 퍼민 김 회장.(왼쪽) 1942년 멕시코 메리다 한인국민회 회원들이 태극기와 멕시코 국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1905년 4월 4일. 1033개의 꿈이 멕시코 유카탄에 닻을 내린다.

"묵서(멕시코)가 애니깽(용설란) 농장에서 노동자를 모집한다"는 한성순보 광고 기사를 보고 모험을 감행한 1세대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이다. 일포드호를 타고 40여 일 만에 도착한 유카탄 반도. 하지만 환영 행사도 잠시 기다리는 것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인종 차별, 가혹한 노동이었다. 한몫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지만 고작 지금 돈 3달러를 받았다. 땡볕아래 가시 돋친 선인장인 '에네켄(Henequen)'을 수확했던 한인들은 이후 에네켄으로 불렸다.

올해 티후아나 한인회장으로 선출된 퍼민 김(58) 회장은 에네켄 3세다. 치과의사였던 그는 은퇴하고 샌디에이고에서 부동산업과 차량 판매업을 하고 있다. 한인 부인과 결혼해 25세, 15세 두 딸을 두고 있다.

김씨는 "우리 할아버지도 1905년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 와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며 가정을 꾸렸다. 폭염과 저임금 속에서도 힘들게 가족을 부양했다고 들었다"면서 "부모님은 유카탄에서 태어난 에네켄 2세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의 노동계약기간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됐고 1950년대 캘리포니아로 이민갔다가 티후아나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에네켄들은 선인장보다 더 악착같이 살았다. 쿠바로 이주했던 에네켄 2세 임천택(1985년 사망)씨의 회고록 '큐바 이민사'에는 "금전 저축은 고사하고 그날 그날 생활도 곤란하고, 4년 계약에 팔린 몸(이었다). 쓰라린 눈물로 마음의 눈으로 고국 하늘을 바라볼 뿐"이라고 썼다. 그럴수록 고국에 대한 사랑은 깊어졌다. 끼니 때마다 한 숟가락씩 덜은 쌀을 모아 팔았고, 월급의 5%를 독립자금으로 전달했다. 한글 교재를 만들어 우리글을 가르쳤다.

퍼민 김 회장은 "이민 1세였던 우리 할아버지도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유카탄 한인센터를 짓는데 힘쓰셨고 할머니와 어머니도 멕시코 현지에서 각종 한인 행사가 열릴 때마다 열심히 참여하셨다"고 말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에네켄 후손들도 기념행사를 연다. 1976년 설립된 티후아나 한인회는 3일(일요일) 오후 1시 티후아나 리오 브라보(Rio Bravo 854 Col Revolucion)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 최근 5년간 중단했다가 다시 재개했다. 에네켄 200여명이 모여 국기에 대한 맹세와 함께 애국가와 멕시코 국가를 부른다. 유카탄 전통춤과 한국춤을 추며 독립정신을 기념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바하 캘리포니아와 티후아나 일대에 에네켄들이 250가정, 1000명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독립정신은 우리와 조국의 역사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고리다. 그것을 잃는다면 정체성 자체를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코리안 블러드(Korean Blood)'를 힘주어 말했다.

"라디오조차 없었던 시절부터 우리는 세대에서 세대를 이어 독립운동사를 배웠다"면서 "우리 에네켄 조상들은 애국심이 투철했다. 조국의 기념일마다 행사를 열어 매우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 전통이 우리 핏속에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나는 우리 에네켄들이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타인에게 친절하며 따뜻하고 사업 기질도 뛰어나다. 우리는 여전히 밥(Pop)과 김치(Kimchi)를 먹고 물(Mull)을 마신다. 멕시코에서 태어났을 뿐 나의 피는 99%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권유로 6년만에 다시 티후아나 한인회장을 맡았다. 한국 독립 정신과 전통 문화 전승에 힘쓸 계획이라고 했다.


황상호 기자 hwang.sa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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