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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상] 로봇 심판과 개혁의 속도 조절

지난 1~2주 사이 MLB에는 대형 계약이 속출했다. FA 최대어였던 매니 마차도(샌디에이고)와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의 행선지가 정해진 것이다. 각각 3억 달러가 넘는 메가딜이었다.

이런 뉴스에 묻혔지만 주목할만한 계약이 있었다. MLB사무국이 한 독립리그와 맺은 MOU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새로운 경기 규칙과 장비 도입을 테스트해보겠다는 뜻이다. 기간은 3년으로 한정됐다.

MLB가 시험해보고 싶어하는 것은 로봇 심판이다. 이제까지 인간이 내리던 판정에 기계의 힘을 보태겠다는 시도다. 모든 스포츠의 고민은 판정의 불완전성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MLB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8년부터 비디오 판독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처음에는 홈런 판정에서 시작됐다. 그러다가 점점 확대됐다. 아웃·세이프, 페어·파울 등에 대한 재심이 다뤄지기 시작됐다. 이제 가장 중요한 영역 하나가 남았다. 스트라이크와 볼에 대한 판정이다.

흔히 로봇 심판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이미지는 다르다. 팔, 다리가 달린 영화 속 로봇의 형태는 아니다. 휴대와 이동 설치가 가능한 측정 장비들이다. 스탯캐스트(Statcast)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본래 군사 목적으로 개발됐다. 항공모함이나 전투기에 장착돼 적의 항공기나 미사일 등을 관측, 추적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스탯캐스트가 활용되면서 야구는 혁신적인 기술 변화가 일어났다. 타구의 발사 각도, 출구 속도, 비거리 등에 대한 데이터가 소수점 이하까지 정밀하게 출력되기 시작했다. 투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자마자 스탯캐스트는 이미 도착 지점을 정확히 예상할 수 있다. 회전과 속도를 측정해 100분의 1초 만에 결과 값을 뽑아낸다. 오차 범위는 0.1인치 미만. 당연히 스트라이크 판정에도 활용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2015년 북가주의 샌라파엘이라는 소도시에서 열린 독립리그 경기였다. 당시는 스탯캐스트의 하위 버전인 '스포츠비전'의 투구추적 시스템(PITCHf/x)이 사용됐다. 그날 경기는 매우 순조로웠다. 선수 중 누구도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기술적인 문제는 거의 없었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그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났다. 그런데도 MLB는 여전히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오히려 3년간 MOU로 준비기간을 연장시켰다. 바로 이 점이 음미해야 할 신중함, 또는 속도 조절이다.

판정 자동화, 그러니까 로봇 심판에 대한 MLB의 입장은 철저한 투트랙 전략이다. 일단 실무진은 적극적이다. 언제라도 실행이 가능한 상태를 구축해놓았다. 이미 스탯캐스트를 30개 구장 전체에 완비시켰다.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매 경기 후 심판들에게 전달한다. 판정 오류를 복습시키는 의미지만, 사실은 '당신들보다 훨씬 정확한 시스템은 이미 준비돼 있다'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반면 커미셔너(롭 만프레드)는 보수적인 스탠스를 지킨다. 자동화에 대한 그의 코멘트는 언제나 사려깊다. "(기계화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갈 길이 멀다" 또는 "우리는 심판들을 존중한다. 그들은 경이로운 일을 수행하고 있다" 같은 정치적인 수사들이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전통, 그리고 심판(노조)이라는 중요한 구성원과의 '협의'라는 틀을 깨지 않겠다는 자세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기술 혁신은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자칫 속도 조절에 실패하면 미래는 충격적일 지 모른다. 완충 역할을 해주는 것은 시간이다. MLB가 로봇 심판 문제를 다루듯, 인간과 과학 사이에는 이해와 조화가 필요한 것 같다.


백종인 /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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