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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상] 그래도 도전하라

겨우 세 살 때였다. 장애 판정을 받았다.

청각 장애는 1급이 없다. 2급이 가장 높다. 두 귀의 청력 손실이 90dB 이상인 상태다. 완전히 들리지 않는 정도다. 그 다음이 3급이다. 80dB 이상인 손실이다. 귀에 가까이 대고 크게 얘기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런 상태로 테니스를 치는 선수가 있다. 이덕희(21)다. 치는 정도가 아니다. 한국의 손꼽히는 유망주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여곡절이 많다. 학교 갈 나이가 됐다. 부모의 근심도 깊었다. 운동을 시키기로 했다. 단체 종목은 어려웠다. 골프는 겁이 났다.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다. 그래서 택한 게 테니스였다. 사촌형 중에 선수가 있었다. 다행히 라켓도 좋아했다. 특수 학교에는 테니스부가 없었다. 일반 학교로 진학시켰다. 레슨비, 코트 사용료… 이것저것 드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한달에 200만원 씩은 필요했다. 그래도 보람은 있었다. 실력이 쑥쑥 늘었다. 두 살 위 형들도 상대가 안됐다. 대회 성적도 제법 괜찮았다. 소문이 나며, 도와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어머니 박미자씨의 기억이다. "낮은 등급 대회는 심판 없이 하는 게임도 많아요. 그럴 때는 상대 선수가 아웃(OUT)인지, 인(IN)인지 알려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애가 못 듣는 걸 알면서도 대충 말로 얼버무리는 거예요. 헷갈리게 만드는 거죠." 싸움이 잦았다. 서로 점수 계산이 안맞아서다. 말이 안 통하니 그건 더 힘들었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가슴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다. "저쪽 선수 부모가 자기 애를 막 야단치는 거예요. '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XX 같은 애한테도 지냐?' 그런 소리가 저한테는 다 들리죠."

16살 때였다. 국제테니스연맹(ITF)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했다. 선배 정현보다 1년 빠른 나이였다. 한국 최연소 우승 기록이 됐다. 19살 때는 세계 랭킹이 130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레벨이 위로 갈수록 한계를 겪었다. 청력과 테니스 선수로는 작은 체격(174cm, 70kg)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라켓을 잡았다. 결국 또 하나 역사를 썼다. 지난 21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윈스턴세일럼 오픈 때였다. 첫 경기에서 헨리 라크소넨(스위스)을 2-0으로 이겼다. ATP 투어 사상 청각장애인이 거둔 첫 승리였다.

세계적인 매체들이 모두 주요 뉴스로 타전했다. ATP 투어와 윈스턴세일럼은 홈 페이지 메인 화면을 모두 이 소식으로 장식했다.

같은 선수인 테니스(Tennys) 샌드그랜(미국)은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몇 년 전에 그를 이긴 적이 있다. 경기가 끝난 뒤 찾아와서는 구글 번역기를 통해 자기 약점을 물었다. 깜짝 놀랐다. 만약 내가 들을 수 없고, 영어마저 못하는 상황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굉장히 멋진 친구였다."

이덕희의 꿈은 윔블던 우승이다. 굳이 그 대회를 꼽은 이유가 있다. 코트가 예뻐서다. 그 다음 소원이 있다. 우승컵을 들어올릴 때 관중들의 환호성을 듣는 것이다.

그를 인상깊게 본 또 한 명이 있다. 세계적인 선수 라파엘 나달이다. 201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레슨하는 행사도 가졌다. 그 때 나달은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내가 그를 가르친 게 아니다. 그가 나를 가르쳤다. 그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그래도 나가라. 그리고 도전하라'고."


백종인 /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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