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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수학자가 자살 전 선택한 마지막 과일

김석하의 스토리 시사용어 (7)
사과

영국 50파운드 지폐 초상인물을 발표하는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 총재. [본사전송]

영국 50파운드 지폐 초상인물을 발표하는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 총재. [본사전송]

영국 중앙은행 50파운드 지폐
초상 인물로 '앨런 튜링' 선정
동성애자로 약물 투여를 통한
화학적 거세 선고받고 끝내 자살
2차대전 당시 독일군 암호 체계
'에니그마' 해독, 종전 앞당겨


시신 옆에는 빨간 사과 하나가 덩그러니 남았다. "아~삭." 한 입 베어먹은 사과.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였다. 더 이상 모욕과 수치심을 참을 수 없었다.

경찰이 질문했다. "그 청년과 무슨 관계였습니까?" 그저 '좀 아는 사람'이라고 둘러댔으면, 위대한 영웅으로 길이길이 남았을 것이다. '파트너'가 그까짓 얼마 안 되는 돈을 훔쳐갔을 뿐인데, 굳이 동성애 관계까지 밝힐 필요는 없었다.

영국 50파운드 지폐 초상인물을 발표하는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 총재. [본사전송]

영국 50파운드 지폐 초상인물을 발표하는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 총재. [본사전송]

영국 중앙은행(Bank Of England)이 영국 지폐 중 최고액권인 50파운드 지폐(62.70 달러·2021년부터 유통)의 초상 인물로, 앨런 튜링(1912-1954)을 선정했다.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유학으로 프린스턴대를 나온 튜링은 영국의 엘리트 청년처럼 달리기와 조정 실력이 수준급인 청년이었다.



영국 정부는 동성애자인 튜링을 '음란행위 일반에 대한 위반'으로 기소했다. 법원은 약물 투여를 통한 화학적 거세 선고를 내렸다. 이후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을 투여받아야만 했다. 가슴이 나오고 살이 급격히 불었다. 몸은 엉망이 됐고,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은 송두리째 짓밟혔다.

튜링은 유서에 "사회는 나를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순수한 여자가 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고 남겼다. 순수한 여자는 독사과를 베어먹은 백설공주를 의미했다.

사실 그는 전쟁영웅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난공불락의 독일군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하는 '더 봄브(The Bombe)'를 개발한 수학 천재였다. 이를 통해 독일의 암호무전을 해독, 역정보를 흘리는 등 연합군의 작전수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에니그마 해독작전 성공은 종전을 최소 2년 앞당겼고, 1400여 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니그마는 타자기처럼 생긴 암호 제조기다. 자판에 A를 누르면 출력은 Q. 다시 같은 글자를 눌러도 다른 글자가 튀어나온다. 이를 매일 바꾸면 내일은 A가 F도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A~Z까지가 기하급수적으로 곱해져 경우의 수가 나온다. 그 경우의 수는 끔찍할 정도다. 158,962,555,217,826,360,000.

영국 중앙은행은 50파운드 지폐의 초상 인물로 앨런 튜링을 선정된 이유를 그의 업적이 '다방면'으로 현재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방면이라….

일단 앞서 언급한 대로 그는 암호해독으로 인한 전쟁영웅이었다.

특히 그는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또는 '인공지능(AI)의 아버지'로 불린다. 튜링은 컴퓨터의 개념적 기초를 확립했다. 그가 제시한 '튜링 기계'는 개인용 컴퓨터(PC)에서 수퍼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컴퓨터의 원형(原型)이다. 또한, 이와 관련해 그가 제시한 '튜링 테스트'는 아직도 인공지능(AI)의 기본 개념이 되고 있단다.

튜링의 암호해독 과정과 전반의 삶을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에서 학창시절 유일한 친구는, 왕따인 튜링에게 말한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낸다."

또한, 그는 동성애자였다. 지금이야 아이들에게 동성애 교육까지 시키지만, 그때는 철저히 배척되는 시대였다. 확실히 튜링의 존재는 영국 중앙은행 말마따나 지금 이 시대의 잣대로 보면 '다방면'으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인류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사과들이 있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잡스의 사과, 그리고 앨런의 사과.


김석하 논설위원 ksha@koreadaily.com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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