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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하필이면 왜 나에게?

김지영 / 변호사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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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9/09/0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9/02 13:04

필그림(Pilgrim)이라는 지구인이 외계의 별 트라팔마도(Trafalmadore)에서 온 사람들에게 납치된다.

그 별 거주민을 위한 동물원에 지구인(Earthling)의 표본으로 전시되기 위해서 끌려간다. 이 지구인이 묻는다.

"Why me?" "하고 많은 지구 사람들 중에 왜 나를 잡아가니?" 트라팔마도 사람이 대답한다.

"Why me?" "이런 질문을 하는 놈은 지구인밖에 없어. 왜 너냐고? 그렇게 따지면, 왜 우리? 왜 이런 모든 일들이? 부질없는 질문이 한이 없지.

이 순간은 그저 있을 뿐이야. 호박(amber) 속에 갇혀 있는 벌레, 너나 나나 그 벌레와 다를 바 없어. 이 순간이라는 호박 속에 갇혀 있는 신세."

커트 보네것 (Kurt Vonnegut)의 1969년 소설 '5번 도축장(Slaughterhouse 5)'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Why me?" "왜 나를?" "왜 나에게?" "왜 내가?" '나'라는 자의식이 생긴 이후 이 질문을 해보지 않은 지구인이 있을까?

그 소설 속의 외계인들은 왜 "Why me?"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까? 이들은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구인을 보면 그의 현재만 보는 것이 아니고 지나간 모든 시점에서 있던 그가 보인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 있는 한 지구인을 보면 그가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를 다 알 수 있다.

"Why me?"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세상에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누군가의 디자인 또는 선택의 결과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또한 이 말 속에는 그 상황에서 '나'라는 존재가 항의, 앙탈을 하면 마주치고 있는 현상이 바뀔 수도 있다는 확신 없는 바람이 깃들어 있다.

3차원의 세계에 사는 지구인은 "지금 여기"를 느끼는 능력밖에 없다. 그래서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감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자리가 고통스러운 상황이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그 누구를 원망한다. 그리고 억울해 한다. "Why me?" 하고 항의라도 하면 혹시 그 누군가 들어주리라는 희망을 갖기도 한다. 4차원의 세계에 사는 트라팔마도리안(Trafalmadorian)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차원에서 한 존재를 본다.

한 지구인을 시간 차원에서 보면 그의 "지금 현재"는 그의 지나간 시간의 연속적 모음의 한 단면일 뿐. 이 외계인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천안통을 가지고 있다. 천안통을 얻으면 모든 것이 막힘이 없이 보인다.

트라팔마도라는 아마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지상에 태어나기 전에 계셨다는 도솔천인듯.

"Why me?" 우리말로는 "왜 하필이면 나?"로 번역하는 것이 제격이다. 우리는 적어도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가 우연이 아니라 어떤 필연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 필연이란 부처님 가르침에 의하면 무시이래로 인연들이 얽힌 결과. 그 연기를 이해한다면 "Why me?"라는 한탄의 질문은 부질없는 짓. 억울해서 앙탈을 한다해도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온 업보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의 '나'는 시작 없는 지난 세월의 수 없는 '나'의 뭉텅이. 가없이 오는 시간 선한 인연으로 새 뭉텅이를 만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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