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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행정이 '쓰레기 도시' 만들었다

기획/LA 쓰레기 대란
창간 45주년 <1> 스키드로·자바시장 르포

폐지 값이 폭락하면서 LA다운타운 자바시장의 한 봉제 공장 주차장에 빈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김상진 기자

폐지 값이 폭락하면서 LA다운타운 자바시장의 한 봉제 공장 주차장에 빈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김상진 기자

"잘 연출된 일일 드라마(a well-choreographed daily drama) 같다." 두 달 전 LA타임스는 LA다운타운 노숙자 집단거주지인 스키드로(skidrow)의 청소 악순환 실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LA시는 지난 6월 한 달 동안 노숙자 텐트 894곳을 찾아가 쓰레기 1만2022파운드를 치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은 다시 노숙자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다. 특히 한인 사업자가 많은 자바시장은 2년 전 쓰레기 수거 비용이 상승하면서 쓰레기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두 달 전부터는 쥐떼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LA도심과 한인타운 쓰레기·노숙자 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쥐가 들끓자 철사 묶음으로 막아놓은 배수관.

쥐가 들끓자 철사 묶음으로 막아놓은 배수관.

쓰레기 수거 시스템 바뀌면서
수거비 오르고 폐지값은 폭락
폐지 쌓이고 오물은 몰래 버려
쥐까지 들끓어 전염병 우려도


지난달 21일 오후 3시, LA 다운타운 스키드로는 한가했다. 뜸한 차량 통행 사이로 노숙자들이 비틀거리며 걷는다. 인도는 텐트가 점령했다. 여기저기 음식 찌꺼기가 묻어 있는 일회용 스티로폼 상자와 비닐봉지, 음료 컵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다. 노숙자들은 쓰레기 사이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운다. 그 옆에선 비둘기가 쓰레기를 헤집는다.

십여 년간 LA다운타운에서 방향제 수출업을 하는 레이먼드 가오씨는 "쓰레기 대란이 생긴 첫 번째 원인은 노숙자다. 가게 업주들은 쓰레기를 모아 공동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노숙자들이 쓰레기통을 헤집고 오물들을 아무 곳에나 버리고 있다"며 "시에서 치우면 뭐하나, 곧바로 더럽혀지는데…"라고 혀를 찼다. 다운타운 쓰레기 대란은 노숙자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이다.



스키드로와 인접한 샌페드로 스트리트 일대 자바시장 거리엔 한인 의류업체 1300여 개가 밀집해있다. 한인 업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쓰레기 문제는 노숙자 증가 뿐만 아니라 시정부의 실정, 자바시장의 불경기 등이 맞물려 발생한 대란이다.

2년 전 LA시 위생국은 쓰레기 수거 신규 프로그램 '리싸이클LA(RecycLA)'를 시행했다. 이 조치로 구역별로 쓰레기 수거 업체가 독점 영업을 하면서 쓰레기 수거 비용은 배 가까이 올랐다.

자바시장 A 도매센터는 대형 쓰레기통 18개를 12개로 줄였다. 층마다 있던 쓰레기통도 철거했다. 쓰레기 수거 업체가 강철로 된 대형 쓰레기통을 고층으로 올리면 개당 한 달에 500달러를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A 도매센터 관리자들이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관리비를 올리지 못해 고육지책을 쓴 것이다.

쓰레기통 접근성이 떨어지자 일부 가게들은 문 닫은 가게 앞에 몰래 종이상자와 음식물이 담겨 있는 비닐봉지를 버리고 있었다. 이마저도 노숙자가 헤집어 난장판인 곳이 많았다.

석 달 전부터는 폐지 가격이 내려가 폐지 수거도 원활히 되지 않고 있다. 거리마다 옷가게들이 던져놓은 상자로 가득했다. 여기다 노숙자들이 불을 지르고 있어 인근 경비원들은 초긴장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최모씨는 "예전에는 사업자들이 개인 쓰레기와 종이 상자를 가게밖에 놔두면 히스패닉 폐지업자들이 '서비스'로 개인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대신 버려주고, 종이 상자를 공짜로 가져갔다"며 "하지만 폐지 가격이 1톤 트럭 한 대당 140달러에서 40달러로 폭락하면서 폐지를 주워가는 횟수도 줄고 개인 쓰레기를 대신 치워주는 일도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쓰레기가 쌓이면서 두 달 전부터는 자바시장에 쥐가 들끓기 시작했다. 특히 건물에서 빗물을 내보내는 우수관은 쥐의 서식지가 됐다. 현장 취재결과 우수관마다 쥐똥으로 시커멓게 더렵혀져 있었다. 뒷골목에서는 쥐 사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A업체 매니저 제나 리 씨는 “갑자기 쥐가 나타나 손님들이 소리를 지르기 일쑤다. 이 가게 저 가게에서 쥐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며 “가뜩이나 장사도 어려운데 가게 이미지마저 안 좋아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B업체 이지훈 매니저는 “한번은 사람이 많지 않은 토요일 오전에 나왔는데 쥐가 여기저기서 막 다니더라”고 말했다. 가게 종업원들은 비가 오면 쥐가 더 많이 출몰한다고 입을 모았다.

쓰레기 대란이 만든 새로운 풍경도 있다. 샌피드로 홀세일 마트는 최근 입주 업체에 공문을 보내 종이 상자를 접어 배출하라고 통보했다. 그동안 폐지 수거업자들은 칼로 직접 종이상자 테이프를 째서 상자를 접은 뒤 가져갔는데, 이 수고를 덜어 더 많이 가져가도록 한 것이다. 또 노숙자 방화를 막기 위해 경비원마다 소화기를 지급했다. 옷가게들은 쥐를 퇴치하기 위해 우수관을 플라스틱 마개로 닫거나 철근 뭉치, 종이 상자를 구겨 구멍을 막고 있다.

22년째 샌페드로 홀세일 마트에서 일하는 장형식 경비반장은 “오늘(21일) 아침 6시에 화염병까지 발견됐다. 보시다시피 화재로 검게 타지 않은 쓰레기통이 없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 반장은 “이 때문에 60여 개이던 CCTV를 지난달 215개로 대폭 늘렸다”고 강조했다.

자바시장 업주들은 연말 물량이 많아지는 10월을 걱정하고 있다. 그때 마구 쏟아져 나오는 종이상자와 음식물 쓰레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황상호 기자 hwang.sa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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