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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금수저 아들, 흙수저 아들

김지영 / 변호사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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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9/09/2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9/21 22:17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의 아버지는 내가 대학 다닐 때 우리 과의 학과장 교수였다.

이생에서 그와의 인연은 그날 짧은 스침이 전부다. 그날, 대학 졸업식 날, 그도 나도 졸업생이었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이런 노래로 유명해진 문리과 대학 교정, 우리 때는 여기서 입학식과 졸업식을 했다.

그때는 이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졌다. 우리 '가문'에서는 어머님, 그리고 시골에서 올라오신 삼촌, 이모, 그렇게 단출한 '축하 사절'이 왔다. 당시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졸업생들 중 소수의 선택 받은 몇 사람들이 이런저런 상을 받는 엄숙한 행사가 지루하게 끝났다. 나는 구경하는 다수 중의 하나였다.

단과 대학별로 서 있던 대오가 흐트러지며 축하객들과 졸업생이 자연스럽게 섞였다. 우리 식구들은 꽃다발, 사진 등 '서울스러운' 축하 의식을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어머님께서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실 때는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혼자서 아들 하나 대학까지 보내신 엄마, 그 맘을 알 것도 같았다.

그때 그의 아버지이며 나의 교수님이신 그분이 내 이름을 불렀다. "김지영이 사진 한 번 같이 찍자." 의외였다. 그리고 고마웠다. 나는 대학 4년 동안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 교수님 방에서 몇 번 번역 심부름을 한 적이 있지만 그분의 총애를 받을 만한 제자는 아니었다.

교수님과 사진을 찍는 영광, 그리고 그 감격. 그런데….

그 다음 말씀에 당황했다. "모자 위의 그 술(tassel)을 좀 빌려줘." 졸업식장에서 입는 졸업복과 모자를 졸업식 직전에 나누어 준 것이었다. 사각 학사모에는 황금색 술이 달려있었다. 교수님 아드님, 그가 받은 학사모에는 그 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술을 나에게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모자에서 술을 풀어서 교수님께 드렸다. 교수님은 아드님의 모자에 나의 술을 걸어 주셨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서 훤칠한 키에 귀공자 타입이었다. 교수님과 그의 가족은 행복한 기념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그 교수님은 졸업 후에도 여러 번 뵈었다. 내가 서울에서 영자지 기자를 할 때 그 교수님은 그 신문의 고정 칼럼을 쓰셨다. 신문사에 오실 때마다 나를 찾았고, 같이 저녁도 먹고 소주도 마셨다. LA에 오셨을 때는 내가 동문들을 모아 환영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며 그때 서운함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순간의 헛헛한 서글픔은 아직도 내 기억 어느 구석에서 가끔 서걱거린다. 46년 전의 일이다. '금수저' '흙수저' 이런 말들이 일상화되기 훨씬 전의 이야기이다.

아버님의 자상한 배려, 모든 아들들이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걸 갖지 않는 아들들이 공평성이라는 잣대로 분노만 할 수는 없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그 곳에서부터 채워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제 교수님도 돌아가시고 그 아드님도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 순간을 인간의 원초적 자식 사랑 자연스러운 한 장면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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