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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냄새까지 담아야 오래간다

[LA중앙일보] 발행 2019/10/2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0/22 19:07

낯선 음식을 꺼리는 일차적 이유는 냄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냄새를 느끼는 후각세포는 콧속 깊숙이 밀집해 있다. 뇌하고 아주 가까운 곳이다. 따라서 냄새는 뇌를 지배하기 쉽다. 태어나서 10년 사이, 익숙한 냄새가 장악한 뇌에 낯선 냄새를 들이대면 뇌는 질겁한다.

냄새는 원초적으로 감정과 직결돼 있다. '정재인율'이라는 것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정확하게 감각을 재인식하는 비율을 말한다. 냄새의 정재인율은 70% 이상으로 다른 감각보다 높다. 다시 말해 냄새를 맡은 당시 상황을 그대로 기억(재인식)하는 일이 높다.

흔히 말하는 어머니(때론 할머니)의 맛에는 음식 자체의 냄새에다가 그 당시 집 안의 냄새, 그 지역의 냄새, 그 계절의 냄새가 포함돼 있다. 이 종합된 냄새는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냄새야말로 강력한 추억 인자인 셈이다. 그 맛의 기억, 정확히 말하면 그 냄새의 기억은 평생을 간다. 많은 이가 어머니의 맛을 좇아 다니지만,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는 세월이 변하면서 냄새의 퍼즐 조각이 한두 개는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엊그제 한식 세계화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 들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정책은 흐지부지되고 있는 꼴이지만, 신념이 있는 사람들의 기개는 여전했다. 일선 고등학교에 한식 도시락을 제공하며 저변을 확장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랬다. 입맛을 길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식은 원래 느린 음식이다. 몇 달을 땅에서 재우고 기다리는 음식을 우리 민족은 음식의 근간으로 정했다. 된장, 간장, 고추장은 성미 급한 식욕을 침잠시켜 만든 음식이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한두 번의 페스티벌이나 시연회 정도로는 서양의 음식 문화를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다. 음식 표면에만 묻은 양념처럼 혀를 짧게 자극한 뒤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뿐이다. 맛이 배어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내듯 내놓은 마케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인의 '사랑' 김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김치는 고춧가루 양, 젓갈 유무와 그 종류, 숙성 기간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식당이나 남의 집에 갔을 때 '그 집 김치' 맛에 반하거나, 쿰쿰한 향에 아예 손을 안 대는 경우도 있다. '토종' 우리도 그러한데 외국인들이야 오죽하랴. 좋고 싫고, 때론 혐오가 분명히 있을 텐데 우리네 한국인은 죽어라 강요한다. "김치, 좋아해요?" 예의상 "아이 러브 김치!"라는 빈 대답이라도 들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메인 요리가 아님에도 '김치 질문'은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끈질기다.

아이들 도시락에도 김치는 넣었느냐고 물었다. "네, 맵지 않은 걸로 조금 넣었어요." 안 넣으면 안 되나? "입맛(냄새) 길들이는 차원이니까요. 입맛은 총칼보다 무서워요. 총칼은 피하면 그 뿐이지만 입맛에 한번 길들면 도망갈 곳이 없어요."

한식 세계화의 발목을 잡는 것은 우리의 '국물' 문화다. 서양 사람들이 익숙한 접시 문화에 안 맞고, 싸서 들고다니기에도 불편하다. 중식이나 일식에도 끓이는 음식이 있지만 그들은 내용물만 건져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식은 국물 자체가 음식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없었나? "국물이 들어간 요리를 맛보일 수 없다는 게, 예를 들어 감자탕은 아이들이 좋아할 텐데…."

분명 맛은 혀에 있는 미각이 느끼지만, 코감기에 걸려보면 냄새가 사실 맛이라는 것을 느낀다.

한식 세계화는 느려야 한다. 깊은 냄새까지 담아야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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