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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명품과 자존심, 자존감의 함수

[LA중앙일보] 발행 2019/11/1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1/12 17:58

# 명품 매장에 가면 '하얀 손장갑'과 '불친절'에 압도당한다. 가격표의 숫자는 나중이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직원들은 하얀 손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명품을 다룬다. 고객이 쉽게 만져볼 수도, 마음대로 꺼내볼 수도 없다. 게다가 고객이 와도 본체만체. 무언의 냉랭한 불친절은 자존심을 긁는다. 하얀 손수건과 불친절은 고객에게 대놓고 말한다. "꺼내주고 보여주면, 살 수 있는 능력은 돼?"

# 자존감과 자존심은 모두 자신을 좋게 평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자존심은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얻는 긍정이며, 자존감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긍정이다. 이에 따라 자존심은 끝없이 타인과 경쟁해야 존재할 수 있으며, 꺾이면 무한정 곤두박질친다. 반면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확고한 사랑과 믿음, 긍지다. 상황에 따라 급격히 변하지 않는다.

# '명품(名品)'.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내에서는 안 쓰던 단어였다. 1995년 루이뷔통 홍보 담당자는 고민했다. '럭셔리(luxury)'를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하는 게 좋을까'. 사전대로 옮기자면 사치품쯤 되는데, 어감이 부정적이다. 그대로 쓰자니 낯설었다. 선택된 단어는 명품. 매력적이고 함축적인 느낌의 이 단어는 한국 내에서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를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명품이라는 단어의 확장성이 얼마나 빠른지 패션에서 화장품, 자동차, 전자 기기, 음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며 급속도로 퍼져갔다.

# 몇 년 전 한 대학 연구팀이 이색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직원이 불친절할수록 소비자의 구매율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 고급 백화점을 예로 들었다. 쇼핑객이 화장품을 구입하러 백화점을 찾았는데 직원이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계속하자, 쇼핑객은 고가의 화장품을 구입했다. 상당수 쇼핑객이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보고서는 직원의 행동과 소비자 입장을 비교 분석한 결과,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구매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밝혀졌다.

# 사회관계측정(sociometer)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자존감이 개인이 지각한 자신의 사회관계를 반영하는 척도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누군가가 원만한 사회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는 자존감이 높을 것이고, 반대로 사회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경우, 자존감이 낮을 것이라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 연말이 다가온다. 사람들이 모이는 이런저런 자리가 많다. 콧대를 세우고 싶은 계절. 이맘때부터 명품 드러내기에 목숨 바치는 사람 여럿 본다. 다음달 카드 명세서를 보면 자존심의 대가를 실감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명품은 일반인에게 '매우 비싼 것'이다. 명품을 사는 사람은 일반인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에 구매한다. 정작 상류층은 일반인의 명품을 '고작 그거?'하는 데도 말이다.

# 자신감은 도전하고 싸울 수 있게 하는 '창'의 감정이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방패'의 감정. 자존감은 창과 방패의 부딪침, 즉 모순(矛盾)을 슬기롭게 통제하는 통 넓고 깊은 마음이다. 자존심은 그때 그때 변하는 방어적 기제이지만, 자존감은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 명품 에르메스의 브랜드 철학은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다. 당신의 명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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