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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외할아버지의 올초 망태기

김지영 / 변호사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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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3/19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20/03/18 18:43

외할아버지 올초 망태가 돌아왔다. 마이너 선생님 부인이 소포로 보내주셨다. 제임스 마이너, 54년 전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 그때 내가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시골 집에 갔을 때 외할아버지가 선물한 그 망태기.

그때 그 순간 그 자리를 담아둔 세피아 빛 사진을 꺼내 본다. 당시 외할아버지 집 나무 마루, 마이너 선생님, 선생님 친 동생 넬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나. 맨 오른쪽의 마이너 선생님과 맨 왼쪽의 나만 살아있다.

당시 할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였을 터이다. 사진 속에 그 망태기가 있다. 망태기는 옛 시골 사람들이 쓰던 백팩, ‘올초’는 아마도 풀로 엮었다는 뜻일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이 망태기를 손수 기른 왕골로 만드셨다. 여름 내내 질척거리던 할아버지 집 뒷간 뒤 후미진 곳에서 왕골이 자랐다. 세모꼴 왕골대는 어른 키만큼 자란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베어내서 껍질을 벗긴다. 껍데기는 말려서 돗자리를 만든다. 속살은 꼬아서 끈으로 쓴다. 그 끈을 엮어서 바랑으로 만든 것이 올초 망태기이다. 시골 사람들은 이런 망태기를 지고 장 나들이를 했다.

마이너 선생님은 공주 영명 고등학교에 선교사로 오셨다. 나는 영명학교 학생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 같은 또래 학생들이 선생님 숙소에서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 성경도 읽고, 영어 노래도 듣고…. 마음 속 봄바람이 참 보드라운 때였다.

2019년 5월 옛 제자들이 마이너 선생님 부부를 공주로 모셨다. 마이너 선생님은 1972년 미국으로 돌아와 조지아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셨다. 여자 셋, 남자 하나, 네 명 남은 그때 학생들도 50여년 전 고딩 모습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 추억 여행 중 마이너 선생님 부인이 외할아버지 올초 망태기를 돌려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외할아버지가 만든 올초 망태기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내 곁으로 돌아와 보물 대접을 받지만 다시 반 백 년이 지나면 이 망태기는 어디로 갈까? 망태기는 아직도 정정하다. 앞으로 한 오백 년은 거뜬할 듯. 그러나 망태기에 얽힌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 존재의 이유도 없어질 터. 혹시 운이 좋아 어느 박물관에 걸린다 해도 박제된 먼 나라의 옛 물건일 뿐.

사람도 마찬가지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명이 다 했을 때가 아니고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다 사라질 때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아직은 이생에서도 존재한다. 그들을 기억하는 마지막 외손자가 이 세상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까지.

돌아온 올초 망태기를 보니 옛 노래가 들린다. “그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세월이 많이 지났지 (Long time passing).” 공작새 꼬리로 심장을 쓸어내는 듯한 조앤 바에즈 의 목소리. 내가 아직 세상일을 모를 때(when I was innocent) 마이너 선생님 숙소에서 릴 테이프(Reel Tape)로 듣던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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