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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훈자, 카쉬가르, 백양사 그리고 LA

김지영 / 변호사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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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4/02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20/04/01 19:03

훈자, 파키스탄, 2018년 4 월. 왕성으로 가는 황톳길, 동네 여인들이 걸어간다. 치렁치렁 통치마, 뚝뚝 강낭콩 꽃물이 흘러내릴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그들과 나란히 걷는다. 갑자기 그 중 한 여인이 내게 무엇인가를 내민다. 엉겁결에 받는다. 금방 자신이 먹던 홍당무 반 토막. 잇자국이 선명하다.

받은 것을 버릴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상황. 일단 받는다. 현지 가이드에게 얘기했더니 호들갑을 떤다. “그녀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최고의 표시.”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믿기로 한다. 순간을 스쳐가는 인연의 진실일 수도 있다.

아득한 훈자강을 내려다 본다. 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파미르 고원, 그 너머 중앙아시아, 동쪽으로는 중국. 혜초 스님이 생각난다. 그분도 1400여년 전 이 강을 건너며 나처럼 ‘최고의 대접’을 받았을까.

카쉬가르, 신장, 2018년 5월. 카쉬가르 일요일 가축 시장, 사람에게나 집짐승에게나 야성이 뿜뿜. 서역 땅 곳곳에서 기른 소, 말, 양, 낙타가 여기서 거래된다. 터키계, 몽골계, 이란계, 중국인, 종족을 알 수 없는 산 사람들이 몰려든다. 거기에 여러 나라에서 온 구경꾼들까지.

장터는 먹거리도 풍부하다. 입구에는 수박, 호두, 아몬드 등 신장의 과일들과 싸구려 잡화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안쪽으로는 노천 고기 구잇집. 양고기가 지글거린다.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양 머리와 네 다리가 불판 밑에 버려져 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서역 아저씨가 즉석 주스를 짠다. 커다란 유리잔에 선홍색 석류 주스 한 잔, 천상의 맛이다. 잔을 놓는 순간 바로 그 잔에 다시 주스를 짠다. 그 잔은 곧 바로 다음 사람에게로. 내가 받은 잔도 앞에 사람이 마신 그대로였을 터. 졸지에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그 또는 그녀와 입술을 맞댄 꼴.

1972년 4월, 선운사에서 백양사로 가는 길. 대학교 4학년 봄, 같은 과 친구들과 선운사를 찾는다. 최종 행선지는 백양사. 걸어서 산을 넘는다. 어스름 황혼 녘 이름 모르는 고개를 넘다가 주막집을 만난다. 막걸리 한 주전자 안주는 김치 한 보시기. 환상의 요기, 참 맛있다. 그 김치는 만인의 공용. 다 떨어질 때까지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젓갈씩 집어 먹었을 것.

2020년 3월, LA. 같은 상에서 밥 한끼 같이 먹는 일도 금지된 일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요된 미덕이다. 역병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해도 야속하고 어색하다.

입을 댄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두 번째로 가깝고 은밀한 짓. 한 세대 전 우리 한국인에게는 그런 음식 나누기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미 우리는 먹는 일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훈자의 여인이 불쑥 건네준 먹다 만 당근이 당황스럽고, 카쉬가르 가축시장에서 받은 남의 입술 자국이 있는 유리잔이 불편했던 것은 음식 나누기의 최소 거리가 그만큼 멀다는 뜻이다.

백양사 가는 길 주막 집 공용 김치는 그저 맛있기만 했는데…. 밥 한 사발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가 멀어져 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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