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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귀가 아니라 가슴에서 울린다”

고수를 찾아서 <12> 수화통역사 강순례 사모
수화통역자 1기생 32년차
88년 영락농인교회서 배워

훌러턴에 있는 남가주농인교회의 강순례 사모가 예배 중 수화로 통역하고 있다. 수화는 존경한다, 섬긴다는 뜻이다.

훌러턴에 있는 남가주농인교회의 강순례 사모가 예배 중 수화로 통역하고 있다. 수화는 존경한다, 섬긴다는 뜻이다.

교회 야유회에서 한자리에 모인 농아 교인들.

교회 야유회에서 한자리에 모인 농아 교인들.

남편 강상희 목사와 개척
학교·법원·응급실 비롯
농인 도우미 역할 자처
2006년 남가주농인교회 청빙
특유 ‘농문화’ 알아야 능통
‘파’는 ‘할 수 있다’는 의미
인디언처럼 고유이름 작명


몸의 언어는 원초적이어서 정직하다. 입의 말은 듣기에 편하지만 나올 때도 들을 때도 왜곡되기 쉽다.

세상이 갇히면서 말은 더 혼란스럽다. 근거 없는 말들과 근거 있는 말들이 뒤섞여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말보다 몸짓에서 진실의 실마리를 찾는다.

갇힌 세상에서 지난 한달여 매일 정해진 시간 열려온 TV기자회견장에 수화통역사들의 몸짓은 더 돋보인다.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그리는 손과 팔의 동선은 옆에서 발표자의 말보다 역동적이다.



남편 강상희 목사는 ‘미소가 아름다운 순례씨’에 반했다고 했다.

남편 강상희 목사는 ‘미소가 아름다운 순례씨’에 반했다고 했다.

한인 수화통역사를 12번째 고수로 꼽은 배경이다. 9년전 인터뷰가 생각났다. 남가주농인교회 소개 기사<2011년 10월18일자 A-30면>의 주인공인 강순례(53) 사모다. 그는 한국 수화통역사 1기생이다. 32년째 소리의 말을 농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1988년 특수학교 교사가 되려 서울 영락농인교회를 찾아가 수화를 배웠다. 수화통역사 국가공인자격증이 없던 시절인 1997년 농인협회가 실시한 첫 민간자격증 시험을 통과했다. 2006년 동갑내기 남편 강상희 목사와 남가주농인교회 3대 목사로 청빙돼 미국에서도 한인 농인들을 돕고 있다.

그의 일을 설명하려면 생소한 단어부터 알아야 한다. ‘농아(聾啞)’는 듣지 못하고(聾), 말하지 못한다(啞)는 뜻이다. 청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언어장애인을 포함하는 말이다. 보통 들리지 않으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은 ‘건청인(健聽人)’이라고 한다.

농의 정의는 소리의 크기에 있다. 90데시벨(dB)을 듣지 못하는 고도난청이 ‘농’이다. 귀가 아플 정도의 소방차의 사이렌이 이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그는 “농인들은 듣지 못해 꼼꼼히 보지만 건청인들은 들을 수 있으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할 때가 있다”고 했다. 센서스국에 따르면 미국내 청각장애인은 1150만 명 정도다.

#못 듣는 세상과 대화

대학 졸업 후 특수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다. 1980년대말 한국에서 수화는 배우기 쉽지 않았다.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정부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서울 영락교회 부속 농인교회를 찾았다. 교인수가 400~500명 되는 세계 최대 농인교회였다. 말에서 느끼지 못한 몸의 언어는 매일 새로웠다.

지금의 남편 강 목사는 당시 신학교에 다니던 전도사였다. 날 때부터 농인이었던 남편은 신앙이 깊었고 성실했다. 남편은 ‘미소가 아름다운 순례씨’에게 청혼했고, 두 사람은 91년 결혼했다.

부부는 부천에서 작은 농인교회를 세웠다. 서울영락교회까지 오기 힘든 농인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농인과 건청인 부부 사역자는 양쪽의 말을 이해했다. 교인 40명 정도의 교회는 얼마안가 120명으로 성장했다.

“그때만 해도 수화통역사가 필요한 곳이 많았어요. 교인들뿐만 아니라 농인협회에서 와달라는 요청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죠. 학교, 법정, 경찰서는 물론이고 농인 가정에 가서 건청 자녀 수화도 가르쳤어요. 짜장면 주문까지 도운 것도 기억나요.”

2005년 미국에서 전화가 한통 왔다. 남가주농인교회 초대 목사인 이진구 목사였다. 고령인 이 목사가 후임을 맡아달라 요청했다. “미국에 올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0.1%도 없었어요. 갑작스런 부탁에 오래 고민했는데, 오히려 한국 교인들이 적극 찬성해 주셔서 오게 됐어요.”

#새로운 세상과 대화

2006년 1월에 도착했다. 남가주농인교회는 1980년 미국 최초의 한인 농인교회다. 역사는 오래됐지만 형편은 한국과 달랐다.

한국 교회는 청년들이 주축인 반면 LA에선 30명 교인중 대부분이 강 목사 부부보다 나이가 많았다. 39살 동갑내기 젊은 목사 부부는 조심스럽게 일의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시간이 필요했어요. 신뢰가 쌓이면서 고맙게도 어르신들께서 다 우리 부부를 존중해주셨죠.”

교회에서는 건청인들을 위한 수화교실을 열어 농인 세상과의 간격을 좁히는 데도 힘썼다.

부부의 노력에도 교인수는 늘기 어려웠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농인교회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한 사각지대에 놓인 농인들이 많다. 농인 한 명을 전도하기가 건청인 100명을 전도하는 것만큼 어렵다고들 한다. 이민 추세도 원인이다. 한국의 농인 복지혜택이 미국보다 많아지면서 농인들은 이민을 선호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농인교회는 최근 큰 꿈을 꾸고 있다. 한인 2세, 다민족 농인들을 품는데 주력하고 있다. 재작년 가을에 예배 장소도 훌러턴 장로교회로 옮겨 새 출발했다. “8년 전 영어수화를 할 수 있는 한인 전도사가 합류하면서 영어 예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주변에 수화 예배가 필요한 분들이 있다면 우리 교회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언어 전달 32년의 대화

-거의 10년 만의 인터뷰다. 농인에 대한 인식은 나아졌나.

“올해 우리 교회는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남가주 유일의 농인교회인데도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한인 2세 부모님들은 우리 교회가 있는지조차 몰랐다고들 한다. 농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다.”

-코로나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요즘 코로나와 관련된 TV 기자회견에 수화통역사들이 동석한다. 이분들은 마스크를 쓸 수 없다. 그 이유를 건청인들은 잘 모른다. 수화는 얼굴 표정이 아주 중요하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당신을 좋아해’라는 말을 표정없이 할 때와 활짝 웃으며 할 때 상대가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농인들은 마스크를 쓰면 얼굴이 가려져서 의사 전달하기가 더 어렵다.”

-요즘 예배는 어떻게 보나.

“농인들에게 만남은 각별하다. 헬렌 켈러는 ‘맹(blind)은 나를 사물로부터 격리시켰지만, 농(deaf)은 나를 사람들로부터 격리시켰다’고 했다. 교회는 농인들에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장소다. 주일에 모이면 집에 가기 싫어할 정도다. 자택 격리가 된 이후 지난달 22일부터 온라인으로 예배를 보고 있는데 다들 만나지 못해 답답하고 힘들어한다.”

-한미 양국에서 농아 가정을 만났다. 차이점이 있나.

“장단점이 있다. 요즘 한국의 농인 복지혜택은 미국보다 많다. 예를 들어 전철, 버스 등 대중교통은 보호자까지 무료다. 국내선 항공료도 50% 할인해준다. 미국의 좋은 점은 차별 없는 인식이다. 한국에서 농아자녀를 둔 부모들은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미국은 모든 가족이 다 수화를 배워 농아자녀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더라.”

-건청인과 농인 사이의 갈등이 빚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서로간의 오해 때문이다. 농인들은 건청인들끼리 웃고 떠들면 자신의 욕을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건청인들은 청각장애인들의 손동작이 커지면 화를 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상대가 못 알아 들으면 답답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화 교실을 아직도 운영하나.

“2006년부터 한국어·영어 수화 교육 과정을 가르치다 최근 잠시 휴교중이다. 배우고 싶다는 문의는 많은데 막상 개강하면 참석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요즘 영어 수화를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계속 들어와서 개강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얼마나 배워야 잘할 수 있나.

“영어를 잘하려면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이다. 한국 수화는 한국어와 다른 고유한 문법체계와 표현양식을 지니고 있다. 언어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단어 2000개를 외우는 초급과정만 16주가 걸린다. 배운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드는 중급을 거쳐 가장 어려운 관용적 표현을 익히는 고급과정을 거친다. 2년 정도 걸리는데 다 배워도 간단한 의사 소통 정도만 할 수 있을 정도다.”

-관용적 표현이 왜 가장 어렵나.

“농인들은 문장나열식의 문법적 수어보다는 관용적 표현을 더 자주 쓴다. 딱딱하고 지루한 문장식 손짓에 비해 관용어는 부드럽고 뜻이 무궁무진하다. 관용어는 그들만의 문화를 알아야 배울 수 있다. 이 의사소통방식을 ‘농 문화(Deaf culture)’라고도 한다.”

-관용어의 예를 든다면.

“수화로 ‘할 수 있다’는 말은 원래 세 단어를 써야 하지만 관용어로는 ‘파’라고만 표현하면 된다. 파는 구화법(독순술이라고도 한다. 상대의 입술의 움직임으로 말을 이해하고, 발성연습으로 음성언어를 익히는 방법)을 배우는 청각장애인들이 촛불을 앞에 놓고 발음연습을 할 때 가장 발음하기 어려워 하는 단어다. 그래서 파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 됐다.”

-다른 농문화를 소개한다면.

“수화를 배우기 전까지 몰랐던 것 중 하나는 ‘얼굴 이름’이다. 농인들은 서류상의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하나씩 갖고 있다. 마치 인디언 이름처럼 '지혜로운 바람’같은 식이다. 얼굴이나 성격상의 특징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는 강순례라고 하기보다 ‘순례자’에서 연상되는 ‘나그네 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가별 농문화도 다른가.

“다른 나라의 수화도 자세히 보면 독특한 농문화를 읽을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끌어안는 동작을 한다. 프랑스는 양손가락 끝을 하나로 모은다. 우리말 수화로는 주먹 쥔 왼손 위에 오른손 바닥을 아래쪽으로 해서 돌린다.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동작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수화 표현을 가르쳐달라.

“놀랍다고 할 때 건청인들도 양쪽 눈이 빠지는 동작을 한다. 수화도 같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랍다는 뜻이다. 또 목을 손으로 치는 동작을 하면 ‘너 끝장이야’ ‘잘렸어’의 뜻이 된다.”

-농인 사역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우리 사역은 한 손에는 복지, 다른 손에는 복음을 들고 한다. 복을 주는 사역이다. 한 임신부가 있었는데 검진부터 출산까지 병원에 동행해 통역을 해줬다. 순산했을 때 기쁨은 평생 잊지 못할 듯싶다.”

-농인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선교가 우리 교회의 꿈이다. 2012년부터 기독교 신앙이 금지된 A국에 신학교를 세워 돕고 있다. 농인 목사들을 배출하면서 지금까지 35개 농인교회가 세워졌다. 코로나19 때문에 그 교회들도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 재정 도움이 필요하다. 또 우리 교회에는 신분 문제 등 가정 형편상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지 못하기도 하고 보청기를 살 수 없는 아이들도 도움이 필요하다.”

-언어의 고수란.

“언어는 성대로 나오는 음성뿐만 아니라 몸짓, 감정, 표정을 아우르는 생각 전달 행위다. 그래서 말할 때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하고, 들을 때도 소리가 아니라 가슴의 울림을 경청해야 한다. 농인들은 수화로 찬양할 때 박자를 듣지 못해 리듬을 맞추기 어렵다. 제각각인 수화가 나오지만 손짓의 울림은 정말 아름답다. 본인의 원래 모습 그대로 꾸밈없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도움 주실 분들:(714)334-4117 강순례 사모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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