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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난 학교에 우리 딸이…”

한국과 미네소타 사이의 ‘人’ (3) - 김병문 박사

알면 알수록 감사한 참전용사들
매년 감사행사에 장학금 사업도

미네소타주의 김병문 박사(76·사진)는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해 산다.

그는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가를 알면 알수록 감사해진다”고 했다.

김 박사는 197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미네소타대학에서 교육행정학 석·박사를 취득(1984년)했다.

그는 2004년부터 미네소타주 참전용사들을 위해 매년 감사 야유회를 진행하고 있다. 참전용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음악 공연도 함께 즐기면서 감사를 표하는 시간이다. 매해 행사를 DVD로 제작, 타주 지역 참전용사에게까지 나눠주고 있다. 2014년부터는 매해(1인당 500달러·총 20명) 자비를 들여 참전용사 후손들을 위한 장학금 사업도 펼치고 있다.



김 박사는 “전쟁의 승패는 결과를 봐야 한다. 남과 북의 발전상을 비교해보면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가를 알 수 있다”며 “한국을 잊어버리고 싶다 했던 그들이 훗날 한국이 발전한 모습을 보며 너무나 놀라워 한다. 그들은 한국 제품까지 사용하며 미국 사회에서 한국을 널리 알리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지의 공개한 사진 <본지 6월25일자 a-1면> 을 보면 아직도 눈시울을 붉힌다. 1950년 12월20일 미군들이 고아 1000명을 미 공군 수송기(C54) 16대에 나눠 태우고 서울에서 제주도로 피신시킨 사진이다.

김 박사는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미군들이 고아들을 안고 내리는 사진은 지금봐도 감동적"이라며 “나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서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혜택은 못 받았지만 대신 참전용사들에게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그는 둘째 딸이 1998년 MIT에 입학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MIT 10번 건물 벽면에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MIT 학생 8명의 이름을 봤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그들이 돌아오지 못한 학교에서 우리 딸이 공부를 하게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며 “한편으로는 너무나 애통했을 학생들의 부모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참전용사 장학금 사업이 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지고 있다. 또,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한국 교육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책도 쓰고 있다.

김 박사는 “그들은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싸웠다. 나는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고마움을 생각하면 그들의 이름이 대대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은혜를 아는 이상 그가 감사를 멈출 수없는 이유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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