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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사모곡

지난 5년간 토요일마다 함께 점심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에는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 최근 수주 동안은 제 직장 점심시간을 활용해 짧은 만남을 가졌지요. 오늘은 어떤 음식으로 정할까 고민하던 일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당신 몸이 장소를 이동할 때 제 품에 잠시 머무는 순간마다 보여줬던 당신의 수줍고 미안해하던 표정이 새삼 그립습니다.

어떻게, 이제 새로운 곳으로 가셨는데 조금 익숙해지셨습니까. 헤어진 지 10여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습니다. 휠체어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침대에만 누워있던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제 자유로우실 텐데 말입니다.

당신은 참 바보처럼 사셨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없는 살림에도 더 헐벗은 친척과 이웃에게 쌀과 김치를 나눴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니 저는 사실 잘 모르는 데 오래전부터 그리고 여기 남은 많은 사람이 당신을 정이 넘치는 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타적인 마음과 배려를 이용하려는 사람까지 품으려 했었다지요. 그 깊은 속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요. 돈을 꾸어주고 못 받은 경우는 두 손, 두 발로 헤아려도 모자랍니다. 그 돈을 다 모으면 아마 저는 조물주보다 더 힘이 세다는 건물주가 됐을 겁니다. 장학생도 여러 명 지원하셨지요.

그런데 맑은 물 같은 순수함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오히려 장애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천사 같은 모습과 마음을 가진 당신에게 앞으로는 칭찬했지만, 뒤에서는 이용하려 했습니다. 당신을 바보로 여겼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바보가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닮았나 봅니다. 당신 같은 바보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당신은 재주가 많으셨지요. 제가 먹어 본 일품요리의 대부분은 당신의 손맛이 들어간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신에게서 가곡을 배웠고 당신을 통해 서예를 알았습니다. 당신의 바느질과 재봉틀 솜씨는 전문가 수준이었습니다. 당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그리고 뜨개질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을 입고 다녔지요. 언어에도 남다른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일본어와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쉽게 습득해 병원 통역사로도 활동하셨지요.

당신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분이셨습니다. 새로운 것과 마주하면 위축되기보다는 오히려 즐기셨습니다. 운전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이 추천하거나 권하기에 앞서 당신 스스로 도전할 대상을 찾으셨지요. 일가친척 하나 없는 이민생활에서 창업에 도전한 것만 해도 몇 번이었던가요.

연세가 드셔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며 박사과정까지 마치셨지요.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저에게는 당신의 삶 자체가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당신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웠지요. 일단은 부딪혀 보라고, 바보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손해 보면서 살아도 된다고. 제 남은 인생도 당신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두 아들이 저의 생활을 통해 당신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인생보다는 짧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잘 견뎌오셨는데 결국은 황망하게 가신 당신. 하지만 잠자듯 편안한 모습으로 이 세상과 작별했던 당신. 이제는 슬픔과 고통이 없는 쉼터에서 편안하세요. 살아생전 미처 입에서 꺼내지 못했던 제 마음을 지금에야 뒤늦게 전합니다. “어머니, 지난 85년 세월을 제 어머니로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김병일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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