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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군대 성범죄, 독립 수사기관 필요하다

성추행 피해를 입고 사망한 공군 여군 이모 중사. 성추행 자체만으로도 괴로웠을 텐데 2차 피해까지 당했다. 군의 조직적 사건 은폐와 부실수사 과정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에서 발생한 ‘바네사 기옌 살해사건’이 떠오른다. 군대가 성범죄를 무시하고 무마하려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비슷하다. 기옌은 텍사스주 육군기지 포트후드에서 복무 중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 20세. 갑자기 실종된 기옌이 2주 후 발견됐을 땐 시신은 토막난 채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상관으로부터 살해 당한 것이다. 쫓기던 그 상관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사위원회가 들여다보니 기옌은 가족, 동료들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정작 가해자를 고소하진 못했다. 기옌은 “보복이 두렵다. 성폭력 피해를 알려도 부대에서 무시한 사례들이 많았다”며 불안한 심정을 보인 적이 있다고 했다.

기옌과 같은 군대 내 성범죄 피해자는 생각보다 많다. 지난달 마크 밀리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지난해 군 내 성범죄 피해자가 약 2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전체 병력의 1%에 해당한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2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면 중대한 사상자로 간주됐을 텐데 그 숫자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군에 대한 아군의 공격”이라는 표현도 썼다. 꼭 들어맞는 말이다.



그동안 군대가 성범죄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 90일간 조사를 최근 마친 독립 검토위원회는 ‘군대 내 성범죄 기소권한을 지휘관에게서 분리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지휘관들은 군대 내 성범죄 사건 처리를 자신들의 지휘권 밖으로 빼내 군검찰에 맡기는 방안에 수십년간 저항해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군 최고수뇌부도 해당 권고안을 받아들였다.

기옌의 이름을 딴 ‘바네사 기옌 법안’도 지난달 발의됐다. 마찬가지로 성범죄 수사를 전문 검사에게 맡기자는 내용이 골자다. 군 지휘관들이 수사에 개입될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해자, 피해자 얼굴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점에서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명령복종의 위계구조와 남성 중심 성의식이 강한 군대문화 속에서 피해 호소를 못하게 하는 분위기도 큰 걸림돌로 적용된다. 지휘관에서 분리된 독립적 부서가 성범죄 피해를 조사한다면 보다 공정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

조직의 소속원으로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 해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얽혀있는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 그리고 만일 가해자가 상사일 경우 괘씸죄까지 적용돼 설사 상대가 처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주변인들로부터 후폭풍을 맞을까 두려울 수 있다. 하물며 성추행, 성폭행의 문제는 더욱 민감하고 예민해 자칫 수치감마저 들어 끙끙 앓다 결국 묻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안심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가해자가 처벌된 후에도 피해자가 안전하게 조직에서 생활할 수 있는 보호막이 없는 한 밀리 의장이 말한 대로 피해자 숫자는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오랜 속앓이로 피해자 가슴은 타들어 가는데 오히려 가해자가 더 떳떳한 조직은 결코 건강할 수 없다. 한국과 미국 모두 현재 군 성범죄 부실 수사가 논란이다. 적어도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독립 조사 기관의 설립은 반드시 통과돼야만 한다.


홍희정 / JTBC LA 특파원·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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