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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63> 북미 탐험. 바이킹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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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7/09/14 스포츠 25면    기사입력 2017/09/13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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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왕 샤를3세가 바이킹에게 땅을 떼어주는 조건은 3가지로 프랑크 왕국에 대한 침략을 중지하고 다른 바이킹의 침략을 막아 줄 것과 왕에게 충성 서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춥고 배고픈 채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힘들게 살아오던 바이킹은 따뜻하고 비옥한 땅을 봉지로 떼어준다 하자 얼씨구 하고 협상에 동의했다. 신이 난 바이킹 추장의 말투가 금새 달라진다.

"폐하 폐하께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들은 영원히 폐하께 충성을 다 바치겠나이다." 물론 이 대화를 필자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 스토리가 그렇게 나갔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 왕이 떼어준 땅이 바로 그들 종족의 이름을 딴 노르만디이고 이때부터 바이킹은 서서히 정착 동화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유럽인이 된 것이다.

근데 이 바이킹이 유럽인이 된 다음에도 본래의 침략 근성을 버릴 수 없었나보다. 프랑크 왕의 신하가 되고나서부터 바이킹의 수장은 노르만디 공이 되었는데 그의 후예인 윌리암 공이 1066년 영국을 쳐들어가서 정복하고 영국 왕이 된 다음 노르만 왕조를 세운 것이다. 프랑스왕의 신하가 영국을 정복했으니 영국이 프랑스 땅이 된 것인데 남의 나라 공작으로 있다가 한 나라 왕이 된 인간이 다시 공작하고 싶겠나. 이래서 영국에서 볼 때는 노르만디가 원래 자신들의 땅이니 제 것이라고 우겼고 프랑스왕이 볼 때는 신하가 정복한 영국 땅도 자기네 것이라고.

이렇게 땅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바로 백년전쟁(1337-1453)이다. 싸운 기간을 보면 120년 가까이 되지만 매년 싸운 것은 아니고 자기들 형편 될 때만 싸웠다. 백년전쟁은 영국으로 볼 때 대단한 의미가 있는데 전쟁이 발발하고 난 후 처음으로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그때까지 야만인의 언어로 천시되던 영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문의: (213) 381-0041, martinspanishcolleg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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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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